주먹으로 흥한 자 주먹으로 더 흥한다
2017년 <청년경찰> 이후 2년만에 돌아온 김주환 감독의 신작, <사자>입니다. 바로 다음 작품에서도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을 보면 박서준 배우와의 호흡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죠. 거기에 2016년 <사냥> 이후로 오랜만에 복귀한 안성기가 박서준과 함께 투톱을 장식했고, 우도환, 최우식, 이승준 등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출연진에 올랐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세상에 대한 불신만 남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 그러던 어느 날부터 손바닥의 깊은 상처를 동반한 악몽이 시작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원인에도 고통은 날마다 커집니다. 백방으로 도움을 구하던 중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 안 신부를 만나게 되죠. 뜻하지 않은 싸움에서 자신의 손에 특별한 힘이 있음을 깨달은 용후는 안 신부와 함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악을 처단하러 나섭니다.
종합격투기 세계챔피언의 손에 무적의 퇴마력이 깃들다니, 소년만화의 거대한 시작처럼 보이는 설정부터 흥미롭습니다. <곡성>,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 갈수록 제작 주기가 짧아지는 오컬트 장르에 액션이 붙었습니다. 쫙 빼입은 사람들이 성경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온갖 물건들을 가지고 악령들과 주먹다짐을 벌이는 모양에선 <콘스탄틴>이 생각나기도 하죠.
영화는 그에 상업적으로 충실합니다. 믿음과 종교를 다루면서도 철학적인 걸음을 내딛을 생각은 많지 않습니다. 유년 시절에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능동적으로 극복하거나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 길의 가능성은 산재하지만, 달아오른 아드레날린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보입니다. 정의의 신성한 사도가 운명처럼 갖게 된 신성한 주먹으로 나쁜 놈들을 한 방에 시원하게 때려잡는 그림에 열을 올립니다.
어느 쪽으로든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약한 악령과 영악한 악령, 여러 명의 악령을 각각 남자, 여자, 아이의 몸에 집어넣으며 마치 비디오게임 스테이지를 돌파해 나가듯 러닝타임을 구성하죠. CG의 흉측한 정도와 출혈의 과감함, 비명소리의 데시벨도 따라 커지는 탓에 자칫 피로함을 느끼기도 쉽습니다. 기본적인 연출 의도를 관객의 심장 박동수에 보장되는 흥미로 잡고 있는 듯 하죠.
박서준의 용후는 어두운 과거부터 특출난 능력까지 갖춘 성장형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만, 막상 그 균형을 잡아 줄 캐릭터는 부재합니다. 동료이자 스승인 안성기의 안 신부는 자연스럽게 뒤편으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보아도, 간단한 손짓으로 악령을 양산하던 우도환의 지신은 허무하기까지 한 뒷심의 주범이죠. 만화와 영화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던 유치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또렷하게 고개를 드는 순간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겠구요.
그럼에도 <사자>는 더욱 거대한 세계관을 향한 야심을 아끼지 않았고, 독립된 영화의 흥미와 대장정의 서막이라는 두 목적을 일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이며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주인공의 다음을 기대하게 된 영화는 <마녀> 이후 오랜만이네요. 두 시리즈 모두에게(그리고 양쪽 모두 발을 걸친 최우식의 보장된 노후에)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