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리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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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


독보적인 스타일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입니다. 감독도 감독인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라는 세 명의 이름만으로 충분한 영화였죠. 거기에 알 파치노, 다코타 패닝, 티모시 올리펀트, 에밀 허쉬, 브루스 던 등 카메오급 조연들까지 마주치는 재미 가득한 이름들로 채워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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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할리우드, 잊혀져 가는 액션 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는 여전히 새로운 스타들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릭의 옆집에 최고로 핫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가 이사를 오지만, 은근한 기대에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합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형편상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 릭과 클리프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사건이 터지죠.


아시다시피 제목 속 'once upon a time...'은 '옛날 옛적에...'와 같은, 한 편의 동화를 여는 어구입니다. 지금도 다른 영화들에서 종종 사용되지만, 서부 흑백 시절(?)엔 더욱 통용되었던 오프닝이죠. 타란티노는 제목과 함께, 제목이 올라오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허구의 인물들과 실존 인물들을 뒤섞고, 오프닝 크레딧부터 디카프리오와 피트의 뒤통수에 이름을 바꿔 박은 타란티노-지구를 선언하며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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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초기,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가 극중 인물들로 등장한다는 말에 이번 영화가 바로 그 비극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레 돌았습니다. 하지만 타란티노 특유의 오락적인 고어는 비극적인 실화와 연결되기에 꽤나 위험한 재료였죠. 이에 타란티노는 해당 사건은 영화의 수많은 재료들 중 하나일 뿐, 정확히는 해당 시대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타란티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서부 영화에서 활약했으나 소위 '퇴물'로 전락한 과거의 스타, 자신의 몇 안 되는 주연작을 극장에서 몰래 관람하며 짜릿해하는 신인 배우가 공존하는 '시대'를 조명합니다. 튼튼한 현역인 이소룡과 무하마드 알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길거리에는 지나가는 경찰차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히피들이 즐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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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 때 그 시절을 꼼꼼히 재현해 놓은 거대한 세트의 투어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클리프 부스가 모는 자동차를 충실히 따라가죠.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차를 몰며 보여주고 싶은 광경을, 영화의 중심 전개와 딱히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하나씩 꺼내듭니다. 지루하게 만들고 싶을 땐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고, 장난을 치고 싶을 땐 장난도 거리낌없이 칩니다.


이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보여 주어도 관객들이 집중하면서 볼 것임을 아는 감독의 자신감입니다. 넣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화면에 집어넣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뭘 찍어도 사람들은 이제 이것을 찍으며 즐거워할 자신의 모습까지 상상하며 즐거움의 일부로 인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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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 영화들이 항상 길었다고는 하나, 이번 161분이 특히나 길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타란티노를 향한 충성심에 가까운 팬심, 맨슨 패밀리 사건에 대한 자세한 지식, 튼튼한 방광(?)이라는 세 가지 준비물이 비대해야 합니다. 한두 가지쯤은 아예 없는 관객들도 많을 테니, 이쯤 되면 대중성은 일부러 내려놓았다고 봐야 하겠죠. 물론 그만큼 최후반부 하이라이트의 폭발력이 커지긴 하지만, 그것과 맞바꾸었다고 위안하기에도 버거운 것은 사실입니다.


감독이 내준 기회로 따진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제 값을 톡톡히 해내지만, 의외로 은근한 뒷맛으로 매력을 가져가는 것은 브래드 피트 쪽입니다. 거의 동시 개봉한 <애드 아스트라>에서의 연기와는 결이 전혀 다르죠. <파이트 클럽>이나 <스내치>쯤에서 보여주었던, 까불거리면서도 진지할 땐 한껏 진지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철이 든 깊이를 연기한달까요. 역시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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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타란티노는 열 편의 영화를 완성하고 은퇴하겠다고 예고했고, 심지어 이번 아홉 번째 영화의 반응이 좋으면 곧바로 은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꺼냈습니다.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안타까워하던 팬들의 귀여운 평점 테러(...)도 이어지고 있구요. 이토록 개인적인 영화마저도 이토록 오락적으로 빚는, 분명한 것을 분명하지 않게 활용하는 능력이라면 그리울 수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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