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만큼 영원히 맞물릴 결함들
<블랙 팬서 2>, <앤트맨 3> 등 최근 다소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희망으로 거듭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입니다. 이제는 DC로 건너간 제임스 건이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았고, 크리스 프랫부터 브래들리 쿠퍼까지의 기존 출연진이 모두 그대로 복귀했죠. 거기에 윌 폴터, 척우디 이우지, 다니엘라 멜키오르 등이 합류했습니다.
연인 가모라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던 스타로드, 피터 퀼. 어느 날 가디언즈의 일원 로켓을 노린 초인의 습격으로 로켓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고, 그를 치료할 유일한 단서를 찾아 거슬러올라간 곳엔 은하계의 창조주를 자처하는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한 명의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는 없다고 결심한 피터와 가디언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나서죠.
제작 단계에서부터 조금씩 알려진 대로, 이번 3편은 주인공들 가운데 다름아닌 로켓 라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너구리인지 토끼인지 다람쥐인지 아무도 모르는(?) 로켓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다루죠. 의문의 수술 자국 등 전편들에서부터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음을 암시해 왔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도 못하게 하는 통에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 중심엔 이번 영화의 악당인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있습니다. 기계 공학과 생명 공학에 능통한 이 존재는 완벽한 존재를 창조해 완벽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죠. 여느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이 그러하듯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도덕들은 깡그리 무시합니다. 누가 어떻게 죽어가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생이라고 치부할 뿐이죠.
여러 문명을 창조하기까지 하면서 점점 원하던 결과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조각은 그의 지능과 경험으로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창의성이었죠. 그런데 그 열쇠를 로켓이 쥐고 있었으니,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로켓을 손에 넣기만 하면 필생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힘이 움직입니다.
명색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보니, 전 우주를 지배하거나 상대하고 싶어하는 악당들에게 맞섰던 전적을 떠올려 보면 이번 3편은 상당히 개인적입니다. 물론 그 영향력은 은하계 전반에 걸쳐 있기는 하나, 어찌보면 거대한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명을 상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그가 새로 노리는 것이 하필이면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코웃음쳤던 인물들의 새로운 가족이었을 뿐이구요.
서로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감싸안으며 함께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그리고 부족함이라는 것을 유전자 단위에서 삭제하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대립은 곧잘 들어맞는 조합입니다. 양쪽 모두 부족함을 부정하면서도 정반대의 해결책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죠. 이 사회를 유지하고 또 굴러가게 하는 질서가 있을 것이고, 이는 그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일 수 있을 겁니다.
이렇듯 이번 영화는 시리즈가 이전부터 짚었던 가족의 의미를 되짚습니다. 처음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것을 넘어 타인이라면 기를 쓰고 경계하던 이들이 모였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사이가 된 집단이었죠. 가족 중에서는 이런 가족도 있음을 여러 영화들을 통해 보여주었고, 그 유대감은 어쩌면 어벤져스를 비롯한 세계관의 그 누구보다도 강렬했습니다.
그 가족을 전혀 다르게 생긴 식물들이 모인 숲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번 3편은 각자의 뿌리를 향합니다. 로켓이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죠. 피터, 드랙스, 가모라, 네뷸라, 맨티스까지 지금 여기 있을지언정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유일하게 로켓만이 자신의 출발점을 그 자신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를 향한 호기심은 너무나 아픈 기억들을 건드리기에 엄두도 내지 못했구요.
반인륜적이고 비도덕적인 생체 실험으로 얼룩진 그 내막은 꽤나 어둡습니다. 12세 관람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광경과 설정들이 꽤 많은데, 모두에게 그토록 툴툴거렸던 로켓에게 그런 일이 있었음이 밝혀지며 감정선 또한 역동적으로 요동치죠. 비록 전체적인 얼개는 신파의 파괴력을 키우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특수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며 기시감을 줄였습니다.
로켓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를 새로이 받아들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의 모습을 다루면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3편으로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합니다. 시리즈의 마지막편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관객들과도 어느새 10년을 함께하면서 쌓아 온 정과 동료애를 영리하게 이용하죠. 새로운 캐릭터로는 결코 설득시킬 수 없었을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셈이니까요.
다만 그에 치중하면서 독립된 하나의 영화로 받아들이기엔 각본의 허술함이 큽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B급과 병맛 감성을 적절한 양념으로 사용해 왔고, 이는 지금껏 많은 설정 구멍을 자연스레 책임졌습니다. 멤버 개개인은 힘이 세거나 몸이 날랜 정도에 그치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우주적 존재들에게 맞서서 승리하는 흐름을 어떻게든 말이 되게 하는 일등공신이었죠.
그러나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여느 마블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악당은 알려진 힘과 명성을 시시하리만치 증명하지 못하죠. 1편에서 우주의 지배자를 자처한 로난에게도 댄스 배틀로 덤볐다며, 여긴 원래 그런 시리즈라며 넘어가기에 이번 영화는 먼저 나서서 진지합니다. 타율 낮은 유머로 간간이 핑계를 준비하기는 하지만, 기괴하고 잔혹한 묘사로 점철된 이번 영화에서는 쉽게 통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야기의 방향과 존재가 로켓의 과거를 통해 재정립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게 맞춰지는 바람에, 극중 사건들과 그의 연결고리들은 그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흘러갑니다. 운과 우연에 쉽게 의지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은커녕 재도전하는 것마냥 당연히 정답을 아는 듯 행동하는데, 덕분에 웬만한 위기가 닥쳐도 긴장감은커녕 물음표가 떠오르는 순간이 잦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쪽은 가볍고 하이 에볼루셔너리 쪽은 무거워 불협화음이 나는 와중, 가장 큰 피해자는 어느 쪽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윌 폴터의 아담 워록입니다. 최근 마블이 판에 찍어내는 최강자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내구성과 비행, 손에서 뿜어내는 빔이 특징인 이 캐릭터는 입담부터 성격, 능력 활용까지 둘 중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며 많은 잠재력을 낭비합니다.
단일 영화로는 부족하지만 시리즈 3편에 기대하는 것들은 충족합니다. 물론 그 부족함의 원인이 시리즈 3편에 기대하는 것들을 충족하기 위함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면죄부를 줘야 할 것도 같지요. 가족이 된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음을 짚어주는 시선도 새삼스럽게 따뜻하고, 무대의 크기를 키울수록 작고 근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각본의 힘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