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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6. 2023

<피터 팬 & 웬디> 리뷰

동심과 원작을 인질 삼아


<피터 팬 & 웬디>

(Peter Pan & Wendy)

★☆


 <피터와 드래곤>으로 디즈니와 연을 쌓았던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고스트 스토리>, <그린 나이트> 등 예술성 가득한 영화들을 곧잘 만들다가도 다시 이렇게 디즈니 가족 실사영화에 발을 돌렸네요. 에버 앤더슨, 알렉산더 몰로니, 주드 로, 야라 샤히디, 조슈아 피커링, 자코비 주프, 앨런 튜딕, 몰리 파커 등이 출연한 <피터 팬 & 웬디>입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지난 28일 공개되었죠.



 오늘도 동생들과 투닥대며 모험을 꿈꾸는 소녀 웬디는 도무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른이라는 것은 왜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죠. 바로 그 순간 마법처럼 방 창문에 피터 팬이 나타나고, 신비로운 요정 팅커벨의 도움으로 웬디와 동생들은 밤하늘을 날아 놀라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땅 네버랜드로 향합니다.


 실사 광선을 맞으려고 서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대기열의 다음 주자는 <피터 팬>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맞아도 실사라고 하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먼저 나오기 마련인데, 만드는 김에 그냥 만들 수 없었는지 항상 무언가에 손을 대고 있죠. 피터 팬 이야기야 꼭 디즈니 영화가 아닌 영화까지 합하면 이리저리 보아 왔으니, 이번엔 웬디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할애했습니다.



 주인공 대접을 받는 캐릭터가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전체적인 틀은 비슷합니다. 네버랜드를 찾은 아이들의 선봉에 피터 팬이 있고, 그런 그들을 노리는 후크 선장과의 대립이 각본의 동력이 되죠. 어른인데다가 잔혹하기 그지없는 후크 선장이 아이들을 상대로 매번 코가 납작해지는 기본 설정만 놓고 보아도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피터 팬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피터 팬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아합니다. 피터 팬 이야기를 가져와서 주인공을 웬디로 바꾸려고는 하나, 웬디를 주인공으로 하면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의 대립이라는 기본 전제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의 갈등은 그 뿌리까지 내려가도 웬디가 끼어들 틈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영화는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의 과거사를 중후반부에 걸쳐 꽤 주요한 서사로 써먹습니다. 도대체 후크 선장은 왜 그렇게 집요하리만치 피터의 뒤를 쫓고, 피터는 그런 후크 선장에게 매번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초능력을 가지고 그를 완전히 제압하지 않는 이유를 <피터 팬 & 웬디>만의 이야기로 풀어놓죠. 의외로 흥미롭고, 주드 로의 후크 선장은 극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크 선장이 아주 특출나다기보단 다른 캐릭터들이 죄다 엉망진창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가 펼쳐지고 드러날 동안 웬디가 스스로 해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웬디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는 이유도 피터가 그 전부터 아이들에게 웬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해 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팅커벨의 힘을 빌어 주인공이 되는 건 웬디가 아니라 누가 되어도 무관하죠.


 존과 마이클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서 애니메이션 코스프레를 하듯 돌아다니고, 타이거 릴리를 필두로 한 잃어버린 아이들은 밑도끝도 없이 전개에 끼어들어서는 난데없는 활약으로 피터와 웬디의 끝없는 단점을 맹목적으로 보완합니다. 진작에 후크 선장의 대포에 정복되었어야 할 세계관이 꿈과 희망이라는 무적의 단어로 포장되어 굴러가는 형국이죠.



 이 모든 허술함의 출발점엔 영화가 관객들에게 '피터 팬'이라는 사전지식을 요구하는 데에 있습니다. 피터 팬, 네버랜드, 팅커벨, 요정 가루, 후크 선장, 악어 등 <피터 팬>의 주요 설정들이나 장치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미리 알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판타지 장르라는 이유가 무엇 하나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되지는 않습니다. 마법은 전개가 막히면 써먹으라고 있는 게 아니죠.


 아무 것도 모르는 채, 혹은 피터 팬을 기억에서 잊은 채 보고 있으면 그저 아이들 마음대로 다 되는 난장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그런 아이들의 동심을 찬미하는 영화가 아니죠. 육체적 성장에 따라 자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정신적 성장, 즉 누구나 어른이 되는 순간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입니다. 말하려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정반대를 향하고 있으니 멀쩡할 수가 없죠.



 그렇게 남은 것은 피터 팬 영화도, 후크 선장 영화도, 웬디 영화도 아닌 학예회 덩어리입니다. 디즈니는 이번 영화의 제작비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바다 위에서 배가 날아다니는 후반부 장면만 보아도 1억 달러쯤은 너끈히 썼을 것으로 보이죠. 이쯤 되면 폴 앤더슨과 밀라 요보비치 가족을 위한 값비싼 홈 비디오라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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