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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리뷰

군더더기 상담소

by 킴지



<썬더볼츠*>

(Thunderbolts*)

★★★


영화 <로봇 앤 프랭크>,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제이크 슈라이어 감독이 1억 8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썬더볼츠*>입니다. 개봉 전후의 평가가 썩 나쁘지 않음에도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4억 달러의 벽을 넘기도 힘겨워 보이죠. 국내에는 지난 4월 30일 개봉되어 누적 관객수 91만 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벤져스가 사라진 세상, CIA 국장 발렌티나는 정치적 야심을 위해 과거는 대충 묻고 새로운 출발을 꿈꿉니다. 그 과정에서 어두운 과거의 부산물들은 빨리 청산해야 할 과거의 짐이었죠. 그렇게 옐레나, 존 워커, 고스트, 태스크마스터, 의문의 청년 밥이 한 곳에 모이고, 레드 가디언과 윈터 솔져까지 합류하며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시작됩니다.


언제부턴가 마블 영화 이야기를 하면 진입 장벽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수십 편에 달하는 세계관 영화들을 다 챙겨보는 것도 이제는 정말로 버거운 일이 되었는데, 디즈니 플러스로 나오는 TV 시리즈가 더해진 것은 물론 속편이나 기획이 취소된 차기작들까지 생기며 버려진 이야기와 캐릭터들도 수도 없이 많아졌죠. 그걸 또 하나의 소재로 써먹은 <데드풀과 울버린>같은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이번 <썬더볼츠*>의 진입 장벽은, 그리고 난이도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같은 밑바닥 팀업(?) 영화를 지향하는데, 차라리 아예 다 처음 보는 캐릭터들이면 모를까 언제 한 번씩은 모두 나왔던 인물들입니다. 그것도 <앤트맨과 와스프>, <팔콘과 윈터 솔져>, <블랙 위도우>처럼 은근슬쩍 건너뛰어도 상관없던 곳에서 모였죠.


물론 이번 영화 안에서도 어떻게든 이해를 도우려고 최대한의 친절함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존 워커의 과거 행적이나 옐레나와 레드 가디언의 관계 등은 <썬더볼츠*> 안에서만 알아보고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제모처럼 세계관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관계자들로 대부분의 인원을 구성하는 것이 같은 각본에서는 더 좋은 선택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아쉬움부터 깔고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썬더볼츠*>의 이야기가 매우 편의적으로 전개되는 데에 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를 모두 제외하고 사건만 놓고 본다면 이번 영화는 발렌티나라는 정부 관료와 센트리 프로젝트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죠. 더 정확히는 없애고 싶은 과거들을 소각하는 쓰레기통에 굳이 굳이 2분의 카운트다운을 설정했고, 센트리 프로젝트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센트리 프로젝트 또한 점점 커지는 세계관의 덩치를 손쉽게 이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보다 선하거나 토니 스타크보다 똑똑하거나 헐크보다 힘이 세거나 우리의 어벤져스를 다 합친 것보다 강력하다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이제는 구태여 힘의 원천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뭐가 어떻게 됐는데 돌연변이가 어떻게 잘 맞아서 우주적 존재이자 절체절명의 위기가 됩니다.


이처럼 영화가 설정한 무대 자체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편의적이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가 어떤 활약을 하든 설득력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누가 나와도 슈퍼히어로 영화로는 딱히 의미가 없습니다. 발렌티나의 말마따나 어벤져스를 다 합친 것보다 강한 존재인 센트리가 있는 이상 누가 뭘 어떻게 해도 마블 세계관의 영화가 갖춰야 할 '힘'의 위계에서는 논리적으로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썬더볼츠*>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해결책인 주인공 캐릭터 개개인에게 집중했습니다. 그 잘난 어벤져스도 따지고 보면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기 일쑤였죠. 앞서 언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주인공들과도 다른 <썬더볼츠*>만의 개성이 있다면, 이들은 다름아닌 잘난 놈도 나쁜 놈도 아닌 못난 놈들의 모임이라는 겁니다.


옐레나를 비롯한 우리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과거를 잊기 위해 현실을, 오늘을 일종의 도피처로 삼는 인물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자신을 잊고 모든 것을 쏟아내면 최소한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어제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악인들과 달리 이들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씩 갉아먹히며 터덜댑니다.



때문에 누구에게도 친절하거나 애정을 쏟지 않습니다. 가까워지는 누군가는 자신이 감추고 싶은 과거를 언젠가는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숨기는 것 또한 자신의 죄책감을 더하는 행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도 없고, 그를 함께했던 사람들을 찾아갈 의지도 없습니다. 일이든 술이든 약이든 무엇이든 찾아 자기 자신을 푹 잠기게 할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서로를 발견합니다. 발렌티나가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용병으로, 너무나 특별하고 특수한 조건으로 선별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의 모습에서 각자가 갖고 있는 아픔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듬을 수 있는 것은 서로와 서로의 연대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 <썬더볼츠*>의 핵심 의의이자 주제가 되겠습니다.



뒤집어서 살펴보면 전달하려는 메시지 자체는 지금까지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찾아보기 힘든, 나오기 어려운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것을 유도하는 접근이나 그것을 모두 포장한 전체의 그림은 사람들이 슈퍼히어로 영화에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를 갖추어야 하는데, <썬더볼츠*>는 거기에 실패했죠.


하나의 예를 들자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훨씬 많은 캐릭터들의 더 복잡한 과거사들을 하나의 사건에 성공적으로 엮으면서 슈퍼히어로 영화의 스케일이나 쾌감도 훌륭하게 전달했습니다. 앞선 영화들의 확장되는 이야기이자 뒤에 펼쳐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구요. 그러나 <썬더볼츠*>는 앞선 영화들에서 파생되는 이야기였음에도 뒤에 이어질 영화들까지는 고려할 여유나 생각이 딱히 없어 보입니다.



못난 놈들의 연대라는 따뜻한 주제에 소소하게 만족하며 끝내기에는 센트리나 보이드를 비롯해 세계관에 끌어들인 설정의 덩치가 너무 큽니다. 전작들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캐릭터들로 써내려간 독립된 팬 픽션이었다면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후계자, 다리, 관문 등 이 영화가 당연히 갖추고 시작해야 했을 전제 조건들이 빠져 있으니 맨 마지막의 수식이 얼렁뚱땅 자화자찬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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