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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너스: 죄인들> 리뷰

그렇기 때문에 선을 저버리지 않기를

by 킴지



<씨너스: 죄인들>

(Sinners)

★★★★☆


장편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부터 <블랙 팬서>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마이클 B. 조던과 모든 작품을 함께하고 있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신작 <씨너스: 죄인들>입니다. 북미 본토에서는 지난 4월 중순 개봉되어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국내엔 오늘인 5월 28일 개봉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바로 그 톰 크루즈의 극찬을 받으며 소소한 화제가 된 바 있구요.



1932년 시카고 갱단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미시시피로 돌아온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 큰돈을 벌고 싶은 둘은 술집 주크 조인트를 운영하기로 하고,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촌 새미를 끌어들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며 화려한 오프닝 파티가 열리는 밤, 분위기가 무르익던 와중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 일행이 찾아오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라이언 쿠글러는 아마 영화인을 꿈꾸는 흑인들에게는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자 일종의 아이콘이 된 인물일 겁니다. 조던 필이 제작을 맡았던 TV 시리즈 <트와일라잇 존: 환상특급>에서는 라이언 쿠글러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흑인 청년이 나오기도 했죠. 39세의 젊은 나이에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하루하루 커다란 업적들을 쌓아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라이언 쿠글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흑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전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영화의 장르나 내용을 가리지 않고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을 유지하려고 하죠. 물론 그것이 항상 장점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최소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단단한 동기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흑인 감독들 중에서도 특히나 손에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겠구요.


<블랙 팬서>의 10억 달러 흥행을 가능케 한 수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흑인 커뮤니티의 뿌리를 다루었다는 점이 크게 꼽히기도 합니다. 대부분 정처없이 끌려와 강제로 정착한 탓에 특정한 국가 없이 '아프리카계' 정도로 대표되어야만 했던 것과 달리, 와칸다라는 분명하고도 부강한 뿌리를 마련하며 흑인들의 가슴 속 깊은 곳 잠자고 있었던 목마름을 해소해 준 작품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블랙 팬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속한 작품이자 슈퍼히어로 영화였습니다. 손에 땀을 쥐는 CG 액션처럼 필수로 갖추어야만 하는 요소들이 있는 영화였고, 그것까지 완벽하게 해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영화였죠. 다시 말해 많은 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자본은 갖추었으나 그것을 감독 자신의 의도에 맞추어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전작 <크리드>도 마찬가지였구요.


때문에 이번 <씨너스>는 라이언 쿠글러 본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영화였습니다. 본인에게 자신만의 오리지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무대와 커다란 자본이 교집합을 이룬 첫 번째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죠. 이 회심의 기회에 마이클 B. 조던 한 명으로는 부족했기에 두 명의 마이클 B. 조던(?)과 함께 헤일리 스타인펠드, 잭 오코넬, 오마 벤슨 밀러, 리 준 리 등이 이름을 올렸구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씨너스>는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들과 달리 <씨너스>는 결론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인종 영화이기도, 역사 영화이기도, 음악 영화이기도, 액션 영화이기도, 옳고 그름을 다룬 철학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데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 한 곳에 담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개성 가득한 방식으로 담겼죠.


주인공 새미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목사 집안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새미의 음악을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그런 악마들의 놀음은 그만하고 신실한 삶을 살기를 바라죠. 새미는 그런 아버지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꿈을 포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음에도 언젠가는 자신의 길을 떠나고 싶어하는 소년이죠.



그런 새미의 사촌이자 쌍둥이인 스택과 스모크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돈이야말로 권력과 성공을 향한 지름길이라고 믿죠. 물론 쌍둥이라고 해서 신념도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스모크는 과묵하게 정도를 지향하는 반면, 스택은 위기를 기회라고 우길 입담과 재치만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스모크의 전 연인 메리는 백인과 흑인 혼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백인들은 외모만 보고 메리를 자신들의 편이라고 쉽게 짐작하지만, 메리의 가정사는 그 반대에 가깝죠. 스모크와 스택을 비롯한 흑인들은 메리를 자신들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백인들에게는 일종의 배신자 취급을 당하기에 메리 스스로는 자신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레이스와 보 부부는 백인과 흑인이 서로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자리잡은 아시아인입니다. 백인과 흑인 어느 쪽도 동지도 적도 아닌 동시에 자신에게는 서로밖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죠. 어쩌면 가족을 자기 자신보다도 앞세울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인즉슨 자기 자신보다도 가족이 더 커다란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겠구요.


<씨너스>는 이처럼 마치 미니어처 모형을 만들듯 몇 안 되는 캐릭터들로 당시의 사회상을 빠르게 구현합니다. 인물들의 직업과 성격을 비롯한 개성으로 사회 질서와 위계의 단면도를 그려내죠.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던 이 곳에 모든 것을 뒤바꿀 악, 바로 뱀파이어의 저주를 등장시킵니다. 영화의 제목이 '죄인들'인 이유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극중 모든 것의 근원으로 묘사되는 렘믹은 아일랜드계 백인입니다. 미국 백인들의 눈에는 순수한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죠. 그러나 렘믹을 본 백인들은 백인처럼 생겼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무지함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이었고, 렘믹은 너무나도 손쉽게 살아남아 악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씨너스>는 악을 받아들이는 데에 선택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악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언제나 즐거울 수 있고, 바라던 것들을 곧바로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며 눈 앞에서 춤을 춥니다. 그러나 나서서 먼저 문을 넘어오지는 못합니다. 영화는 수반되는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삶을 끝까지, 그리고 정해진 시간 동안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이야기하죠.



태생적으로 옳거나 항상 올바른 삶을 살아와야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직접적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았든 각자의 죄를 안고 있습니다. 스모크와 스택 쌍둥이만 해도 직전에 알 카포네 밑에서 일하며 손에 수많은 피를 묻힌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술을 달고 살거나 바람을 피우고, 믿음을 저버리는 등 선함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 가득하죠.


물론 직전까지 내려 왔던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길을 정하기가 더 쉬울 수는 있습니다. 지금까지 막 살아왔으니 앞으로 막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쉽고, 지금까지는 지킬 것 다 지키면서 살아왔으니 이제부터는 좀 쉽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쉽죠. 심지어 본인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었기에 악에 쓸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그렇다고 돌이킬 기회를 선택적으로 주지 않죠.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너무나도 냉정하고도 현실적인 영화입니다. 주인공이라고 봐 주지도 않고, 착하게 살았다고 봐 주지도 않습니다. 악에게 오염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음, 신념, 힘, 그리고 운까지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만큼 얻어내고 쟁취하기 힘든 것임을 모두가 알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악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무조건 그릇된 삶이고 죽어야만 하는 삶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빛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둠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자신만의 기준과 신념으로 살아낸다면 그 또한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웬만하면 쿠키 영상은 일종의 보너스 개념으로 이용되지만, <씨너스>의 쿠키 영상은 영화를 완성하는 장치로 기능하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블루스의, 흑인 음악의 수많은 뿌리들 중 하나로 묘사됩니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염원은 멜로디로 승화되고, 그걸 가능케 하는 재능은 일종의 초능력으로 묘사되며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죠. 이 접근은 음악 영화이자 하나의 대체 역사물로도 기능하며 <씨너스>의 대중성과 매력을 더하는 데에도 커다란 공헌을 합니다.



문자 그대로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좁게는 흑인 커뮤니티에 강렬하게 어필할 영화이고, 넓게는 위대하면서도 역사적인 가치를 물려받은 세대에게 전하는 말없는 끄덕임과 같은 영화죠. 소재 측면에서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 네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도 예술성과 대중성까지 단단하게 붙잡았으니, 하나의 영화가 이보다 더한 포만감을 선사하기는 정말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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