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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리뷰

과신의 과시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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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


첫 장편영화 <한공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수진 감독이 5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설경구, 한석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천우희가 모인 <우상>이죠. 예고편에서부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관심을 모았고, 의외로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보통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와 함께하는 CGV 아트하우스 타이틀을 달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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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 이미지 덕에 차기 도지사로 주목받고 있는 도의원 명회. 어느 날 아들이 교통사고를 낸 뒤 그를 은폐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정치 인생을 생각한 그는 아들을 자수시킵니다. 반면 오직 아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중식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시체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절망에 빠집니다. 모든 열쇠는 사건 당일 사라진 련화에게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 명회와 중식은 각자의 방법으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묵직합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는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현재 시점에서 출발해 과거의 행적을 되짚습니다. 흘러나오는 내레이션도 제법 힘이 실려 있습니다. 마치 위인의 명언을 읊조리듯 담담한 목소리는 눈 앞의 광경과 불협화음을 내며 관심을 자극합니다. 관객들은 얼핏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시각과 청각 정보가 연결되기만을 기다리며 집중을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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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은 바로 그 집중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화입니다. 미스터리, 추적, 범죄, 스릴러 등으로 수식할 수 있는 사건을 다루면서도 제목이 '우상'입니다. 무언가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을 것이라 예상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영화는 무려 14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거대한 그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비유와 은유, 신념과 믿음이 뒤섞입니다. 무엇 하나 머릿속에 만만하게 들어오는 것이 없습니다.


우상은 곧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자신이 살아 온 모든 것을 바탕으로 섬기게 되는 우상은 곧 반대로 자신을 정의하기에 이릅니다. 각자의 우상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우상을 바탕으로 개인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사전의 정의를 쉽게 풀면 '숭배의 대상'으로 정리됩니다. 누군가일 수도 있고,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주체가 될 수도 있고, 객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상은 곧잘 그릇된 것과 연결되곤 합니다. 숭배는 응당 신 혹은 신적 존재를 향해야 하지만, 엉뚱한 존재가 그를 대신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마음만큼은 진실되기에 믿음은 굳건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걷잡을 수 없습니다. '우상'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偶像'으로만 풀어도 나오는 해석이고, 동음이의어인 '愚相'으로 따지면 '어리석은 생김새'라는 뜻까지도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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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 중심축인 명회와 중식, 련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상의 탄생에 기여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결과는 셋 중 누구도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며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짓까지도 거리낌없이 저질렀고, 사건과 사건이 물리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드라마가 생겨났습니다. 성스러움과는 정반대라 불러도 무방한, 뒤틀리고 괴악한 손발이 맞잡혀 신이 나타났습니다.


<우상>은 이 커다란 그림을 그려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문제는 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실린 자신감이 오만함의 한계를 너무나 쉽게 넘나든다는 것이죠. 대사와 캐릭터, 이를 담아내는 연출까지도 자신이 대성당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는 도취가 가득합니다. 비유와 은유로 영화의 구석구석을 채우는 동시에 무엇 하나 쉽게 내보일 생각이 없습니다. 이는 엄청나게 높은 진입 장벽이 됩니다.


달리 말해 영화의 기본 바탕이 되는 기승전결보다 그를 감싼 상징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 마당에 그에 담긴 의미를 파고들 의지는 생기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이를 즐기는 듯 불필요한 잔가지마저 여기저기 뻗어 있습니다.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을 분기점이 아니라, 그저 관심을 돌리고 이해를 어렵게 하려는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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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내면이 우상으로 이어지는 여정에만 집중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계층 사회의 단면이라는, 전혀 다른 속성의 주제에마저 한눈을 팝니다. 살아있는 닭의 목을 날리는 사람과 치킨 조각을 손으로 찢어 먹는 사람의 대비가 대표적이죠. 단순히 두 주제의 출발점이 같다는 이유로 영화의 일관성을 해치는 또 다른 욕심을 부립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자만하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합니다.


명회의 야망과 중식의 욕망 등 정작 중요한 것들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의미를 탐구할 가장 기본적인 재료들이 선반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린 셈입니다. 인물들이 보여준 전반부의 모습만으로는 후반부의 행동들을 이해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결과만을 가지고 영 석연치 않은 동기를 되짚어야 하는데, 대강 끄덕이면서 만족하기엔 영화가 나서서 깊이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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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불쾌함의 전시를 작가적인 행동과 자주 헷갈립니다. 유혈과 성 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덜컥 꺼내놓으며 이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과감함을 과시하는 듯 합니다. 박찬욱과 봉준호부터 요르고스 란티모스까지의 이름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여기서는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생겨난 불협화음을 키우는 데에 그칩니다. 결국 비교적 쉬운 이야기를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풀어놓는다는 감상에 도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후반부 천우희 배우의 하얼빈 말(조선족 말) 대사와 설경구 배우의 독백은 생소한 어휘와 부정확한 발음이 만나 최악의 전달력을 자랑합니다. 상황과 인물들의 반응을 보았을 때 너무나도 중요한 말이 분명한데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개봉 버전엔 련화의 대사에 자막이 달릴 것이라는 소식(확정 여부는 모릅니다)도 귀띔을 받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불친절한 영화에겐 배려가 아니라 의무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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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가벼운 뼈대에 푹 젖어 무겁기 그지없는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목 깃은 한껏 세웠습니다. 어느새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뺑소니 사건과 초반부의 인물들은 사라지고, 자신이 사람이라 주장하는 톱니바퀴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그토록 깊이 파내려가 발견한 것에 실망하기도 잠시,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모르겠냐는 설득에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 극중 형사 캐릭터가 '부지기수'를 '부기지수(?)'라고 말하는 장면이 휘리릭 지나갑니다. 캐릭터의 특징 혹은 비중으로 보나 장면 구성으로 보나 의도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운데, 제작상의 실수라고 하기엔 더욱 말이 안 됩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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