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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리뷰

미운 정으로 지운 멍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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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


2006년 <열혈남아>, 2010년 <아저씨>, 2014년 <우는 남자>를 개봉시킨 이정범 감독의 2019년 신작 <악질경찰>입니다. 제목에 성별을 암시해 두었던(?) 전작들의 법칙 아닌 법칙이 깨진 셈이네요.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선균과 2018년 <죄 많은 소녀>로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전소니를 필두로 박해준, 박병은, 송영창, 김민재, 이유영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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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돈은 챙기고, 비리는 눈감고, 범죄는 사주하는 악질경찰 조필호. 급하게 목돈이 필요했던 그는 다름아닌 경찰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우지만, 의문의 폭발에 이은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며 엉겁결에 유일한 용의자가 되고 맙니다. 거대 기업과 검찰의 추적을 피해 실마리를 쫓던 필호는 모든 일의 열쇠를 쥔 고등학생 미나와 엮이고, 지금까지의 일을 빙산의 일각으로 탈바꿈시키는 거대한 음모를 마주하죠.


첫 대사부터 거친 욕설을 쏟아내는 조필호는 '악질경찰'이라는 제목에 충실한 첫인상을 남깁니다. 경찰이라는 단어와 정반대에 있는 행동 양식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는 '경찰이 무서워서 경찰이 되었다'던 말이 가히 모자라지 않죠. 7800억대의 비자금을 갖고 있는 기업 총수가 뉴스에 나오자 7800만원만 주면 알아서 숨겨줄 수 있다며 중얼거리는 등,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조필호의 악의적 면모를 한껏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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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중후반부에 걸친 그의 내적, 외적 변화를 더욱 극적인 것으로 보이려는 준비 단계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못된 사람이었던 그가 알고 보면 이렇고 저렇게 따뜻한 면도 있음을 증명하죠. 이를 가능케 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캐릭터가 바로 미나입니다. 문자 그대로 서로 죽일 수도 있었던 둘은 이내 서로에게서 일말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어쩌면 처음보다는 조금 더 가까워집니다.


마치 <아저씨>의 태식과 소미를 보는 듯 합니다. 물론 자신만의 어두움을 애써 숨기고 살아가는 둘의 내면은 같지만, 미나는 매우 강력해진(...) 소미라고 봐야겠지요. 미나는 언젠가는 되어야만 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을 넘어, 그 곳이 이토록 더럽고 음흉하다면 굳이 가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인물입니다. <아저씨>의 변주라고도 비유해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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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생을 특정한 방향으로 살던 사람이 한 사람 때문에, 한 사건 때문에 완전히 변하는 영화들은 그 과정의 설득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자신을 정의하던 무언가를 내버릴 만큼 급작스럽다면 응당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테니까요. 보통은 누군가의 죽음이 엮여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인명을 등한시했다면 그것마저도 썩 만족스러운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악질경찰>은 고개가 가까스로 끄덕여지는 단계에서 멈춥니다. 제아무리 천성이 나빠 보여도 사람이라면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필호를 밀어 넣죠. 불만 섞인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결국은 인간다운 일을 하긴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구성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끊임없이 도달하는 과정 자체는 운과 우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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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은 곧잘 묘사했지만, 아이의 삶에서 튕겨 나온 아이 쪽은 특정한 소재를 내려놓을 여유를 부리지 못합니다. 무심코 정을 주기엔 제 멋에 취해 사는 캐릭터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재 사이의 이질감이 예상만큼 크지는 않지만, 반대로 부드럽게만 섞여들지도 않습니다. 와중에 의외로 태준 역을 맡은 박해준씨의 연기는 <독전>에서보다 훨씬 영점 조절이 잘 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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