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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리뷰

아메리칸 사이코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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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Vice)

★★★☆


아담 맥케이는 <앵커맨>, <텔라데가 나이트>, <디 아더 가이스>, <스텝 브라더스> 등에 이름을 올리며 윌 페럴 전속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습니다. 그러던 2015년 갑자기 계시라도 받은 듯 내놓은 <빅 쇼트>는 특유의 에너지와 호흡으로 흥행과 평가는 물론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거머쥐었죠(한국엔 <국가부도의 날>을 선사했습니다만). 그런 그가 장식장에 넣어 둔 아카데미 트로피가 외로워 보였는지, 3년만에 <바이스>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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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라 불리는 딕 체니. 송전탑 노동자부터 예일대 2회 낙제생을 거쳐 미국 부통령 자리까지 오른 그는 동료이자 스승인 도널드 럼즈펠드 아래에서, 아내 린 체니 옆에서, 딸 리즈와 메리 위에서 야망을 키웠습니다. <바이스>는 역사의 이면에서 지금까지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결정들을 내려 온 그의 은밀하고도 탐욕스러운 여정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자신의 지향점을 공고히 합니다. 'vice'는 'vice president(부통령)'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악(惡)'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죠. 교묘한 출발점을 바탕으로 <바이스>는 딕 체니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찬찬히 설계합니다. 악인의 탄생은 흔히 성선설을 기반으로 구조에 집중하는 방법과 성악설을 기반으로 인물에 집중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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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는 처음부터 권력욕으로 가득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송전탑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만 해도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동료 앞에서 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였습니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던 작업반장의 말에 가장 늦게 돌아선 사람이었습니다. 음주운전 전과부터 심장병까지 달고 살던 그에게 아내 린은 제발 잘 좀 해 보라며 일갈했고, 그렇게 그는 도약을 시작합니다.


<바이스>는 아주 어려운 균형잡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스스로 악이라고 규정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일방적인 왜곡은 피해야 합니다. 분명 처음부터 악인은 아니었고, 사회 정치적 구조가 지금의 그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한 인물이 주변의 손짓에 타락했다는 묘사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여부보다도 영화 본인의 의도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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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혼신의 연출을 기합니다. <빅 쇼트>에서도 선보였던, 교차 편집과 시각적인 비유를 그야말로 난사합니다. 처음부터 제 4의 벽을 깨는 의문의 제 3자를 투입하고, 내레이션에 들어가는 비유들은 실제 장면으로 옮겨 직접 볼 수 있게 합니다. 인물들의 대화는 낚싯바늘에 미끼를 꿰는 장면이나 입질을 기다리는 장면 등과 번갈아 배치되어 흐름과 양상을 분명히 표현합니다.


얼핏 감독이 관객들을 바보로 아나,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바이스>의 익살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입니다(제작진 목록에 마이클 무어가 들어 있지는 않은가 살펴봐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감사할 줄도, 부끄러울 줄도 모르게 된 딕 체니는 종반부에 마침내 카메라를 바라보며 당당함의 정점을 찍습니다. 점차 확립되는 딕 체니의 개성은 역설적이게도 영화가 보내는 조소와 비례합니다.


지금껏 가장 비밀스러운 지도자를 다루면서도 죽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오프닝 크레딧과 딕 체니의 독백, 참았던 할 말을 토해내는 쿠키 영상이 섞여 진정으로 의도했던 바가 완성됩니다. 영화 내내 드러냈던 직설은 그만큼의 간절함이었음이 밝혀집니다. 또 다른 악의 탄생을 본체만체하며 <분노의 질주> 신작 이야기나 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라는 외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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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고무줄 몸이었던 크리스찬 베일은 또 한 번 변신을 감행했습니다. 머리를 밀고 눈썹까지 염색한 것은 물론 파이를 먹으며 체중 20kg를 불렸죠. 나이가 나이인지라 배우 인생 처음으로 전문 영양사를 대동했다고 합니다. 또한 딕 체니의 심장질환 연기를 위해 의료 지식을 공부했는데, 놀랍게도 영화 후반 작업 중 아담 맥케이의 심장마비 증세를 눈치채 감독의 목숨을 구했다고 하죠.


코와 입술에 붙인 보형물 덕택에 기대 이상으로 조지 W. 부시와 닮았던 샘 록웰, <폭스캐처> 이후 또 다시 전직 레슬러를 연기한(?) 스티브 카렐, 배우 인생 처음으로 메소드 연기에 가장 가까운 상태를 유지했다는 에이미 아담스 등 주조연들의 존재감도 대단합니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할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은 왕년의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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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반부는 하고 싶은 말을 의도의 훼손 없이 듣게 하려 지나치게 공을 들였습니다. 호흡은 느린데 기교는 많습니다. 가짜 엔딩을 포함해서 다소 멋을 부린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기대했던 것보다 아카데미의 반응이 미지근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빅 쇼트>의 경제와 <바이스>의 정치까지, 귓전으로 흘리기 딱인 소재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기술만큼은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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