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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 Dec 21. 2021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얼레벌레 스타트업 마케터의 일기 #8. 팀장님이 퇴사했다.



"어떤 것 같아?"


면접 후에 친구들을 만났다. 최종 면접으로 대표님까지 만난 면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는, 아니 인류애 전체를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또다시 상처 받기 싫어서 (ㅋㅋ)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저 말은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도 뱉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입 안으로 삼켰다. 그리고 사람이 별로인지는 면접 때만 봐서는 알 수 없으니.


입사를 하기로 했다.





입사 후에 느꼈던 건, 팀장님은 부문장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무를 굉.장.히. 많이 하시는 분이었다는 거다. 틈만 나면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서 다양한 것을 물어보고, 혼나고, 이야기하다가 자리를 떴다.


"일주일 일 해보니까 어때?"

"다들 팀장님을 되게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를?"


무능한 상사와 일하다가 저렇게 모든 이들이 의지하는 분을 보니, 이직 잘했구나 싶었다. 지옥 불에 있다가 아궁이 정도(?)로 오니까 "아, 뜨끈, 허다"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달 정도 일하고 나서, 다른 팀원분들과 밥도 먹고 또래들이 많아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팀장님하고 일하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했다. 


"우엉 씨는 그래도 팀장님이랑 잘 지내네요."


알고 보니 다들 팀장님을 어려워했다고 했다.


"그래요...? 팀장님 정도면 좋은 분이죠."


 

쉬운 분은 물론 아니었다. 그렇지만 팀장님은 내가 물어보는 것을 가지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분도, 내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거나, 어떤 업무 스타일로 일하는 사람인지 하나하나 트집을 잡는 분도 아니었다. 매일 "너 내가 얼마나 너 생각하는지 알아?" 하면서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 스트레스 주던 전 상사와는 전혀 다른 분이었다(사실 비교하는 것도 짜증 나지만). 내가 무언가를 질문했을 때, 분위기를 무안하게 만드는 대답을 해주시는 분도 아니었다. 한 달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나쁜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팀장님은 무미건조한 분이셨다. 나한테 "잘했다" 혹은 "잘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살갑게 해 주시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신뢰를 쌓고 나서는 나에게 많은 일들을 맡겨 주셨고, 나는 또 해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마이크로 매니징 당하지 않으니 내 연차만큼, 내 연차보다 더 한 일들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생겼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팀장님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저런 스타일이시구나. 내 타입대로 일하는 걸 존중해주시면서도 팀장님 스타일과의 교차점을 늘 찾아주시는 분.


다른 이들과 있을 때, 그들에게 내 입지와 내 역할에 대해 늘 상기시켜 주셨다. "우엉이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나에게 늘 생각지 못한 답변을 주셨고, 현명하게 일할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인사이트를 제공해주셨다.  어떤 날에는 내가 닮고 싶은, 저렇게 되고 싶은 '어른'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근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내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존경하는 분이에요."

"팀장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엉님이 생각하시기에 어떤 면이 존경할만한가요?" 

"제가 하나하나 보고 있을 때 큰 그림을 제시해 주시는 분이셨어요. 제 의견을 수용해 주시면서도 늘 더 나은 걸 말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넌 뭐하고 싶어?"


가끔 맛있는 걸 많이 사주시고 여긴 꼭 가봐, 하면서 정말 맛있는 맛집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쫓아다닐걸...(?) 그리고 맛집에 데려가셔서 음식이 나오기 전에 꼭 저런 말씀을 하셨다. (동네 맛집 정도 가면서 생색내는 어떤 이와는 정말 너무나도 다른.) 매일의 업무들을 해내면서, 나의 장래나, 미래나, 희망이나, 꿈꾸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렇지만 팀장님은 나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닿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 그러고는 자기 삶의 계획을 말씀해주셨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야"라고 꼭 덧붙이시면서.


팀장님은 식사를 안 하시는 날이 많았다. "나 야근 안 하고, 오늘 일 다 하고 집에 갈 거니까 나한테 밥 물어보지 마. 안 물어봐도 돼." 그리고 오후 업무 시간 중에 나가셔서 샌드위치를 드시고 들어 오셨다. 하루도 '밥' 가지고 스트레스 주는 일이 없었다. (그놈의 밥) 누가 누구랑 밥을 먹고, 왜 나를 빼고 밥을 먹었고, 오늘은 뭘 먹고, 내일은 뭘 먹고... 저런 것들 가지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으니 오히려 먼저 "팀장님 오늘도 식사 안 하세요?"하고 여쭤보게 되었다.






퇴사하실 때 내 속마음을 담은, 진심의 편지를 써 드리려고 했는데, 그런 거 정말 오그라들고, 귀찮고, 싫어하시는 것 같은 분이라 '됐다, 브런치에나 적어야지' 했는데 정말로 딱 오후 1시 22분에, 점심도 드시지 않고, 바로 차를 끌고 퇴근(퇴사)하셨다. 퇴사 기념 파티라도 할 겸, 팀장님과 마지막으로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서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케이크도 사 왔는데... 


"왜 그랬어~"


우리끼리 먹으라고 하시면서 세상 행복한 얼굴로 회사를 떠나셨다. 저 정도로 무미건조한 스타일은 또 처음 겪어 본 나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의외의 포인트에서 희한하게 발작하는 사람보다는 100배, 10,000배 낫다고 생각했다.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중요한 일이야."


나에게 해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가 많이 의지했고 좋아했던 팀장님이 정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만을 바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언니들을 좋아하는 나는 팀장님과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언니로 만나는 팀장님은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를 테니까.


팀장님은 우엉이가 있었지만 우엉이는 우엉이 없고. 우엉이는 이제... real 솔로니까. 울었지만 울지 않았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너무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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