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고구려 의 옛 영토?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교통의 요지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와 눈물의 한인들
두만강 바로 위쪽 중국, 한국, 러시아 삼국의 접경지대가 러시아 연해주이다.
연해주 전체는 한반도의 약 80%쯤 되는 크기에 인구가 200백만 정도이다. 중국 조선족과 달리 고려인 4~5 세대 동포가 재이주 해 와서 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시는 면적이 600㎢이며 인구가 61만 7000명인 연해(Primorskiy) 지방의 주도이다.
블라디보스토크란 러시아어로 ‘동방을 정복하라’란 뜻이다. 러시아의 ‘동진(東進)’을 반영한 근대 도시로서 러시아 극동함대의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며,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북빙양 항로의 종점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지방 최대 어업기지이며, 포경선·게 가공선·냉동선의 근거지이다. 겨울철에는 항구 안이 다소 결빙하지만, 쇄빙선을 사용하여 1년 내내 활동이 중단되지 않는다. 시는 연해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여러 대학이 있다. 하지만 2012년에는 APEC 정상회담이 열렸다.
러시아인들이 1856년에 ‘발견’한 이 도시는 동해 연안의 최대 학구도시 겸 군항이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점이기도 한다.
항만은 표트르 대제만(大帝灣)에서 남쪽으로 돌출한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반도 끝에 위치하며, 신시가지와 별장 ·휴양 지대는 반도 북부의 구릉지로 뻗어 있다
러시아의 ‘동진’ 이전에는 중국 청나라 길림부도통(吉林副都統)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와 영토분쟁이 일어나자 중국은 1860년 불평등한 ‘베이징조약’을 맺고, 이곳을 포함한 우수리(Ussuri)강 이동 지역의 약 40만km2의 넓은 땅을 러시아에 내주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하면서 자그마한 어촌이던 이곳을 일약 시로 승격시켰으며, 점차 연해주 지방의 행정 중심 도시가 된 것이다.
민족의 아픔, 발해 유적지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극동 시베리아는 한(韓)민족의 정통국가인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가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698년부터 926년까지는 발해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발해는 연해주 외에도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치했으며, 지배층이었던 고구려의 후예와 퉁구스 계통의 말갈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해는 동아시아의 중세봉건국가로, 농업, 목축 등의 산업과 함께 고유의 전통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발해는 당, 일본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1115년부터 1234년까지 극동 러시아의 남쪽 부분은 강력한 제국인 여진족의 금나라가 지배하였다. 여진족은 퉁구스계의 민족이다. 유목과 농업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금나라는 또한 야금, 조선(造船) 등의 산업이 있었다. 금나라는 발해와 마찬가지로 송, 고려,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북중국을 점령한 금나라는 꽤 강한 국력을 과시하였다.
금나라는 몽골 제국 칭기즈 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고, 이후 300년 이상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독특한 동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지역과 만주를 기반으로 활동한 만주족(금나라 여진족의 후신)이 17세기 초 중국 대륙을 정벌하고 청나라를 건설하면서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주변의 니콜라예프카(Nikolaevka)나 고르바트카(Gorbatka) 등 발해 성터에서 출토된 8~10세기의 숱한 유물들이 이것을 실증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280km 떨어진 노보고르데예프카(Novogordeyevka) 성터에서는 온돌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발해 유물과 더불어 8세기경에 주조한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의 은화가 발견되었다.
이 은화의 보관자인 러시아의 샤프쿠노프(E. V. Shavkunov)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소그디아나)에서 8세기경에 주조한 이 은화는 교역수단으로 쓰인 것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당시 발해의 특산물이었던 초피(貂皮, 담비 가죽)를 중앙아시아 상인들이 은화를 주고 구입해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가도 되고 동해 시에서 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연해주에는 우정마을과 고향마을이라는 고려인 정착마을이 있다.
연해주에 최초로 살았던 사람들은 고아시아인들과 퉁구스 인들이었다. 5~6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에 이주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나나이, 우데게, 에벤키 같이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아직도 연해주와 아무르 주에 거주하고 있다.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땅,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인들의 애환과 독립투사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항일투쟁의 함성이 지금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