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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Sep 07. 2017

베르테르 신드롬과 부조리 문학이란 ?

마광수의  안타까움 죽음을 바라보면서


                 사진: 마광수 교수 


세상은 무대이고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다.

연극 속에서 주연으로 살지 엑스트라로 살지는 자신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연극의 결말은 누구나 똑같다. 


죽음.  

신은 결코 죽지 않지만 인간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불치의 병, 늙어서 자연사하는 사람 등의 형태는 다양하다.


변함없는 결말의 죽음이지만 그 과정이 힘들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25년 전 소설 ‘즐거운 사라’은 음란물로 몰려 금서와 유죄를 선고받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법정 싸움으로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병고와 생활고, 따돌림, 외로움 등으로 지난 9월 5일 자택에서 자살로 이생의 모든 인연을 다 놓았다.

     

'자유로운 관능'과 ‘성 담론 해방’를 추구하며 시대를 너무 앞선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유보한다.

     

너무 앞선 솔직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했던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사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제는 그의 죽음으로 인한 ‘베르테르 신드롬’에 대한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28.4명이 자살하며 하루에 30여 명이 자살하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기 때문이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말이 있다.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이란 궁극적인 지혜에 이르게 하는 과정일 뿐 종국이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의 선택권이 없기에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항상 죽음에 대한 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슬퍼하거나 주저하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세게 4대 성인 중 한 분인 소크라테스는

억울한 죽음이지만 태연히 독배를 마시는 장면을 한번 들어보자.

     

“간수여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친절했어, 자네도 잘 있게.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가겠네, 참 클리톤(제자),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고 있다가 대신 꼭 갚아주게나.”

 

   

★베르테르효과[Werther effect, ─效果 ]★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유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조리문학이란 무엇인가?

     

부조리의 사전적인 의미는 '도리에 어긋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조리에서의 도피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종교적 도피 (예 키에르 케고르, ‘절망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진정한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깊은 절망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2. 형이상학적 도피(예: 하이데거 “오늘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이 의미도 모르고 존재의 표현도 모른다’)

3. 문학적 도치 (예 카프카)

4. 도덕적 도피(예 제도와 법)

 

이중 부조리문학은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 기본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풍미한 반 휴머니즘적 인식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을 일컫는다.

 

    


부조리문학에서 가장 극적이고 반전의 매력을 준 문장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0)의 단편소설 <변신>에서 나온다.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 자신이 거대한 곤충으로 변했음을 깨달았다.”

카프카에게 인간의 조건은 비극 우울함이다.

동시에 인간 조건은 부조리이다.  그는 ‘신이 기분 나쁜’ 어느 날 전체 인간 종족을 만들어냈다고 믿었다.  

     

따라서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변신>은 1915년 출간되었는데 제 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의 붕괴를 예언하는 소설로 읽혔다.  

카프카와 보해미아의 동료 시민들은 프라하에 중심 둔 제국의 시민으로 살다가 어느 날 깨어보니 정체성이 사라졌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포스 신화>의 첫 부분의 명제는

“진정으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은 자살이다”

이 명제에는 카프카의 아포리즘 “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첫 표시는 죽고 싶다는 것이다”외 일맥상통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르트르의 『구토』는 문학사상 매우 희귀한 작품이다.

두 가지 노력에서 모두 성공한 “철학”소설로, 실존주의 철학 선언인 동시에 예술에 대한 설득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는 문학과 철학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이다. 주인공인 서른 살의 앙투안 로캉탱은 수년간의 여행 끝에 부빌이라는 프랑스 항구 도시에 정착한 연구원이다. 그러나 정착이라는 과정은 일련의 괴상한 효과를 낳는다.

     

로캉탱이 지극히 단순한 일상적 행위에 직면할 때마다, 세상과 그 속에서의 그의 위치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합리적인 견고함을 깨지기 쉬운 한 겹의 껍질로 인식한다. 그는 현실의 메스꺼움, 달콤한 역겨움, 원시적인 단계의 현기증을 경험한다. 그는 무생물의 공허한 무관심에 경악하지만, 그가 처하는 각각의 상황이 그의 존재에 돌이킬 수 없는 날인을 찍는다는 것을 날카롭게 인식한다. 그는 스스로의 압도적인 실재에서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자유와 의무, 의식, 그리고 시간을 섬세한 절제로 탐구하고 있다.

에드문트 후설의 철학과 도스토옙스키와 카프카의 문체의 영향을 받은 『구토』는 20세기 사상과 문화의 가장 중대한 성장이 된 실존주의를 세상에 선언한 소설이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에서 그의 사상을 구체화하기 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율이 증가하기 전,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는 개념이 최초로 넓은 의미에서 사용된 작품이기도 하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도를 기다리며』는 베케트의 희곡 2막으로 2차 대전 당시 겪은 피신 생활의 경험이 밑바탕된 것으로,

그가 남프랑스의 보클루즈에서 숨어 살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한 것이다.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시시포스가 신의 형벌을 받아 평생 바위를 산 정상을 향해 밀어 올리는 것처럼,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 동안이나 오지도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

     

작품에서 ‘고도’라는 인물은 끝내 등장하지 않고

단지 소년 전령을 통해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만 보낼 뿐이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베케트조차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카뮈와 사르트르 등은 부조리문학을 널리 확산시켰다.

공히 인간 존재를 부조리 상황에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부조리 문학은 인간 존재의 비합리성, 무의미성, 의사소통의 차단, 인간 의지의 무력함,

인간의 야수성과 비생명성 즉 인간의 부조리를 보여 준다.



     


음모론은 힘이 세고 문학으로 바뀌기도 한다.

앨릭스 존스는 다큐멘터리 `엔드 게임`에서 한 줌의 `세계 엘리트`가 지구를 손아귀에 넣고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비열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말은 화려하지만 증거는 빈약하다.

     

도로표지판에 유엔 침략군을 위한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 이들이 세계 인구의 80%를 몰살한 뒤에 의료 유전학의 혜택을 입어 신처럼 영원히 살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놀랍게도 이 남자의 라디오 방송은 청취자가 하루 100만 명을 넘을 만큼 인기를 누린다.

     

이뿐 아니다. 구글에는 음모와 관련한 3700만 건의 검색 결과가 있다.

마릴린 먼로, 케네디, 존 레넌 등에 관한 온갖 종류의 음모론을 사람들은 실제로 믿고 문학작품들이 등장한다.

200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6%가 미 정부가 9ㆍ11테러를 공모했다고 믿고 있다.

     

부조리 문학은 광신도의 영역이 아니라 부조리한 사건의 뒤엉킨 역사적, 사회적 변인을 허무맹랑하지만 쉽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취하는 모순된 인간의 양면성을 보인다.

  


   


‘부조리(absurd)’는 ‘조리에 맞지 않음’, ‘이치에 맞지 않음’의 비합리적이라는 뜻과 ‘우스꽝스럽다’라는 뜻의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문학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다양하다. 단 하나의 그릇에 들어맞는 법이 없다.

     

부조리 문학도 보는 입장에 따라서 흥미로운 장르가 된다.

인간은 세상에서 삶의 목적과 의의를 찾으려 하나 세상은 언제나 대답을 거부하여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이유 없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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