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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Aug 25. 2017

삶의 의미, 안다면 헛된  삶이 아니다.

하루를 살아도 삶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이유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모든 의견으로 취합하라


사진: 파피루스 죽음의 심판


한 남자가 죽어 심판대에 섰다.    

남자는 불평했다.

“신이여, 어떻게 죽음의 신호도 없이 갑자기 데려오면 어떠합니까?”    

신은 대답했다.


“ 어리석은 인간아!  무슨 소리 하는 지 모르겠구나?.

흰머리가 나고 얼굴 주름이 생기고 몸 전체가 쑤실 때가 되면 이곳에 올 나이라는

신호인 것을, 자꾸 잊고, 쓸데없는 말 할 때 저승사자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잇다는 것을 모르느냐?

더욱이 주변에 죽은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든지 네 차례라는 것을 알고 준비했어야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법.  심판대에 놓인 내 이름이 적힌 가방을 보고 물었다.


“신이시여 그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네 것이 들어있다.”    


아 그렇다면 재산, 옷, 물건, 돈들입니까?    

그런 것은 네 것이 아니다.  우주의 것으로 너에게 잠시 빌려준 것이다.    


그러면 저의 지난 추억의 기억물입니까?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시간 속에 포함된다.    


그럼 나의 사랑하는 가족, 친구 들이 들어 있습니까?

아니다. 그것들도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아! 나의 것은 모두 빈 것이 아닌가?” 라고

절규하면서 그 남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일꾼 사역들입니까?    

미안하지만 그것도 작은 먼지에 불과하여 사라져버렸다.


눈물과 회환에 찬 목소리로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신은 가방을 보여주면서

 “아무것도 없다.”    

“네가 살아생전 남에게 베푼 일들만이 심판의 판단일 뿐이다. 삶은 순간이다.”    



악착같이 모으고

경쟁과 열심히 살았지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교의 허무사상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가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財物(재물)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사랑하며 살고

행복하길 기도하며

남을 위한 봉사만이 인생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는 데 있어 예외 없이 세 가지 길을 만난다.    


첫째,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이다. 


가족, 동료, 선후배, 이웃 등이다. 경제적, 사회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배려하고 높여주는 공동체 정신이 선결 요건이다.

인간의 진화도 소통으로 이어졌고 향후 1인 가구가 대다수를 차지할 때 인류의 종말은 예상할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 일과 직업으로 맞닥뜨리는 길이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일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눈에 보이고 외부 세상이 비춰주는 모습에 따른다.

실제와 다른 사실을 받아들인다. 

주관적이고 재미있는 인생살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네카(Seneca the Younger)는 "모든 것은 의견에 좌우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남이 뭐라고 하든 평생 즐길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인생 의미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셋째, 철학의 근본 과제인 당당한 죽음으로 나가는 길이다. 


삶의 정도는 생존경쟁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의미 있는 뭔가를 남기면서 떳떳히 사는 것이다.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경원시 할 필요가 없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귀하고 언젠가는 죽기에 오늘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오스트리아 의사 및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개인 심리학 관련 저서 ‘삶의 의미’에서 인생길에서 비틀거리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산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라는 평소 중시한 삶의 현장 철학을 이야기 하였다.  

   

아들러는 삶의 자세에 대하여 

“개인은 자신과 완성이라는 성취 불가능한 이상(理想)을 영원히 비교하면서 언제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지내는 가운데 이 열등감의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 법칙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절대적 정확성이라는 상상 속의 관점에서 보면 틀림없이 잘못되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들러는 우리 인간만 아니라 모든 유기체는 단 한 순간도 멈춤이 없다. 여기서

움직임이란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포함한다.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맺고자 한다.


의미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의 삶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죽음과 연관 된 지금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동체 의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운명이 정해진다.    


"삶의 근본적인 법칙은 극복의 법칙이다. 이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과 육체적 및 정신적 균형을 위한 노력, 육체적 및 정신적 성장, 완성을 위한 노력 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는 위험을 이해하고 피하는 것, 육체를 진화론적으로 개인의 죽음 그 너머로까지 지속시키는 생식, 인간의 발달 과정에 이뤄지는 협동, 이 목표들에 기여한 모든 사람의 공동 성취 등이 포함된다."(아들러의 삶의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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