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기술

역사와 문화가 팔딱거린 환상의 이스탄불

초일류국가가 되기 위한 사소한 제언

by 김진혁

역사와 문화의 환상적 조화, 아름다우니까 이스탄불이다.


세월의 나이를 슬퍼하지 마라 진정 슬퍼해야 할 것은 마음의 나이가 드는 것이다 _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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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떨리기 전에 여행하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다지 길지 않았고(8일) 안단테의 느린 단체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마칠 시점에 그만 감기 몸살에 걸렸다. 뜨겁고 사랑하고 환상적인 터키 여행의 마침표가 다행으로 생각되니까 말이다.


이스탄불은 터키 여행의 관문이자 종착역이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가 만나는 국제도시로서 인구 1700만 명이 숨쉬며 오늘도 수천 년 역사의 영욕을 토해낸댜.다. 길거리, 골목 구석구석에서도 역사의 흔적을 쉽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스탄불(Istanbul)은 아시아와 유럽을 경계 짓는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에 임한 터키의 가장 큰 항구 도시이다.


명칭 또한 여러차례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으로,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을 때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1453년 시작된 오토만 터키시대에는 이스탄불로 불렸다.

1922년 터키 공화국이 수도를 앙카라(Ankara)로 옮긴 후 1930년 정식으로 이스탄불이라고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로마가 476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이후에도 동로마제국은 중세 기간 동안 이 곳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유지되었기에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유적들이 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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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야소피아 박물관 전경


1. 아야소피아 박물관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건축물이다.

건축학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건물로 장방형 바실리카(basilica) 형태로 로마 공공건물에서 볼 수 있는 목재 지붕이다.

성 소피아는 기독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기간 306~337년)시대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여 360년,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 때 완성되었다.


하지만 404년 대지진으로 극히 일부만 남고 거의 파괴되어 오랜 기간에 걸친 재건과 보수 끝에 2차 교회가 415년 완공되었다. 하지만 이 두 번째 교회도 532년의 폭동(Nika Riot) 때 완전히 불에 타고 파괴되었다. 세 번째 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Justinianus)의 재위 기간 중인 532년부터 537년까지 약 5년에 걸쳐 두 번째의 교회 건물과 매우 다른 새로운 형태로 지어졌다.


성 소피아는 기독교 교회, 모스크, 그리고 박물관으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거대한 중앙 돔은 직경 31m, 높이 54m에 달한다. 이곳은 원래 성당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소피아(sophia)'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육신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이나 지혜'를 가리킨다. 1935년부터는 현대 터키의 수립자 아타튈크(Atatürk)의 명에 의하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기독교회로 건립되었으며 동로마제국의 멸망 후에는 모슬렘 교도들에 의해 모스크로 사용되면서 모슬렘 건축의 특징적인 뾰족 탑 미나렛(minaret) 두 쌍이 15세기와 16세기에 각각 추가되었다. 내부의 모자이크화는 회벽과 코란의 문자들로 덮였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성당의 흔적과 이슬람 사원의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돔 아래 걸린 직경 7.5m 크기의 검은색 원판에 새겨진 강렬한 금색 글씨는 이슬람의 4대 초대 칼리프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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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층 복도에 예수님 그림


아야소피아 안에 회벽으로 가려졌던 모자이크는 1931년 미국인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타튀르크의 지시로 복구 사업이 진행되어 2층 화랑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아야소피아 박물관’이며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가 특히 유명하다.

아야소피아는 외부 복도와 내부 복도, 본당 1~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 왼쪽 안에 있는 나선형 통로를 지나 2층의 갤러리로 올라가면 금색으로 반짝이는 모자이크화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모자이크화는 9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의 성상 파괴 이후 그려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최후의 심판에 임하는 예수와 성모마리아,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또한 아야소피아 성당의 출구 뒤편에는 비잔틴제국의 황제들이 성모마리아에게 콘스탄티노플과 아야소피아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나타낸 모자이크화가 있다.



2. 돌마바흐체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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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서구화를 통해 국운이 기울어가던 오스만제국의 부흥을 꾀했던 압둘 메지드 1세가 건설한 궁전이다.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한다. 돌마바흐체의 돌마는 터키어로 '꽉 찼다'는 의미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작은 만을 메우고 정원을 조성해 '가득 찬 정원'을 뜻하는 돌마바흐체라 불리게 된 것이다. 해안을 따라 600m가량 길게 뻗어 있어 '바다 위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혼재된 돌마바흐체 궁전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동양적인 형식미가 돋보이는 톱카프 궁전과 대비되는 서양식 궁전이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건설되었고 내부 인테리어와 정원도 프랑스식이다. 오스만제국 말기의 술탄들은 톱카프 궁전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도 영빈관으로 이용된다.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방 285개, 홀 43개, 발코니와 목욕탕이 각각 6개 있다.

규모는 톱카프 궁전보다 작지만 볼거리가 많다.

궁전 건립에 금 14톤과 은 40톤이 사용되었으며 샹들리에 36개, 크리스털 촛대 58개, 명화 60여 점, 시계 156개, 화병 280개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었다. 실내를 장식한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수입한 것이다. 바닥에는 최고급 수제 양탄자가 깔려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든 시계가 9시 5분을 가리킨 채로 멈춰 있어 관람객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 이유는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사망 시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그만큼 리더에 대한 존경이 부럽게 느낀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는데 아타튀르크는 1938년 11월 10일 9시 5분, 집무 중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아타튀르크의 서거일이나 주요 국경일에는 아타튀르크가 머물던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방을 특별히 공개하기도 한다.


3.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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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소피아 박물관 정면에 블루 모스크가 우뚝 서있다.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했다.

우뚝 서 있는 첨탑 6개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며,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를 뜻하기도 한다. 사원 앞의 정원에는 화사한 꽃이 피어 있어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모스크 정문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히잡과 신발 담을 봉지를 대여하느라고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내부에 들어온 순간 낮게 매달린 샹들리에가 가장 눈에 뛰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모스크 무늬가 아름답다. 여타 모스크 처럼 정면에는 알라신과 무하마드를 상징하는 그림이 자리잡고 있다.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은 배로 이스탄불로 들어올 때 보이는 전경이다.

멀리서도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웅장한 실루엣을 알아볼 수 있다.


4. 톱카프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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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가 건설을 시작해 1467년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되었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평지에 위치한다.

톱카프는‘대포 문’을 뜻하는데 과거 해협 쪽에 대포가 놓여 있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스만제국 때 세워진 톱카프 궁전은 단순한 왕족의 거처가 아니라 술탄과 중신들이 회의를 열어 국가 정치를 논하던 장소였다.

당시 궁전에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궁전 내부는 정원 4개와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증·개축으로 오스만 건축 양식의 변화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다.

고고학박물관세계 5대 고고학박물관에 속하는 곳으로, 토프카프 궁전 안에 있다. 헬레니즘 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까지의 조각과 석상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기원전 305년경에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물이다.


5. 예레바탄 지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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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바탄 사라이(터키어: Yerebatan Saray)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동로마 제국 시대의 지하 저수지로, 그 뜻은 ‘땅에 가라앉은 궁전’이다.

바실리카 시스턴(Basilica Cistern)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하 궁전은 현존하는 동로마 제국의 저수지 가운데서도 이곳이 가장 최대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이스탄불 역사지구의 한 축으로서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으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지하 궁전은 1987년에 수백 년 동안 쌓인 진흙과 폐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복원되었다.

본래 황실 수도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에 공사를 시작하여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인 532년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지하 궁전의 위치는 본래 황궁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했었지만 오스만 제국 시대에 폐쇄되었다.

오늘날 이곳은 대성당처럼 336개의 둥근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천장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빛을 발산하는 지하실 형태로 되어 있다.


6. 그랜드 바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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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터키 이름으로 카팔르 차르쉬라고 하는데,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이다.

30,700㎡의 면적에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약 5000여 개 이상의 점포가 가득 들어서 있다. 카파르 차르쉬(Kapar Carsi)시장은 아치형 돔 지붕으로 덮인 대형 실내 시장으로, 일반적으로 그랜드 바자르로 알려져 있다. 금은, 식품, 위류 없는게 없는 만물상이라고 보여진다.


1455~1461년 술탄 메메드 2세(Mehmed II)의 명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1세(Suleiman I) 통치 시기의 대대적인 확장을 비롯하여 여러 번의 증·개축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현재 60여 개의 미로 같은 통로에 5,000여 개의 상점이 있다.

시장에는 금, 은 세공품을 포함한 각종 보석류, 피혁류, 카펫, 향신료, 도자기와 기념품을 포함한 각종 공예품과 특산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동서양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에는 하루 최소 25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이곳에서 기념품을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을 마치면서 궁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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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선교지로서 당시 활발했던 7개 교회들이 현재 모두 사라지고 무슬림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가 첫 번째 의문이다.


세계 강대국인 로마와 비잔틴을 물리쳤던 초강국 오스만터키의 몰락이유가 두 번째 의문으로 남는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개인적 소견은 다음과 같다.


바울의 삶을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시 로마인의 신분을 버리고 학식과 명예의 자랑거리가 많음에도 분토처럼 여겼다.

그리고 자천하여 가난과 궁핍과 자지 못함과 억울함과 오해와 핍박과 위험 속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천국의 생명을 귀중히 여겼다. 짦은 인생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꿀 수 있는 담대함과 영적 은혜라고 보여진다.

믿음이란 세상적인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의 수고와 헌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다. 또한 섬김의 고백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만들어 진 것이다.

우주 전체의 규모나 지구 역사만 보더라도 몇 천 년, 몇 만 년의 기간은 영원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천국과 세상의 판단 기준 역시 다르다.

성령과 전도를 대신하는 물질주의와 성공 지상주의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멀어진다.

7교회가 사라진 것처럼 우리나라에 임한 하나님의 촛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찾아온다..

선교하는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는 결코 알려지지 않는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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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스만 제국 군대


두 번째 의문은 오스만 터키키의 몰락은?


초기 오스만 제국은 기술적인 면에서 유럽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는 국가였다.

바다와 철통같은 방어벽인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을 부순 우르반의 거포는 오스만 제국의 기술로서 헝가리인 우르반이 만든 대포로 서유럽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오스만의 과학 기술은 우수한 과학자를 다수 확보 했음에도 전 국가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연구 측면에서 그친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국민 총화를 이루지 못했고 정치 불안, 제도 모순 등으로 쇠퇴한 것이다.

국민 대다수의 문맹률과 지도층의 부패, 높은 세금 등 사회 모순이 사회불안 및 정치 불안을 야기한 것이다.

그 반면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패배이후 각성하였다. 아메리카 약탈로 인한 부의 급증, 르네상스 기술의 발전, 자유주의에 대한 발전 등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내었다.


즉 변화와 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어떠한 대국도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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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리콴유


초일류 국가를 꿈꾸며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국가로 만든 싱가포르의 리콴유(1923∼2015)수상의 생각에 귀기울여본다.

1959년에 초대 수상이 된 리콴유는 싱가포르를‘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싱가포르를 독립 국가로 만들고,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하고, 경제를 완전 개방하여 해외자본 유치에 국운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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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모 전과학기술부 장관도 초일류국가에 관한 의견을 대덕클럽 포럼에서 강조했다. "대한민국 건국지도자들의 국가발전을 위한 신념과 과학기술계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해 왔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융합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초일류 세계국가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일류 국가 도약을 위한 요건으로 ▲정직한 도덕사회 ▲판단력을 기르는 인격함양 교육 ▲혁신하는 과학기술경제 ▲지속가능한 에너지 환경 ▲동북아 집단 안보체제 ▲세계화되는 문화시민생활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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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국가로 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 본다.


첫째,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빨리빨리 문화를 성장에서 성숙으로 옮겼으면 한다. 빨리빨리의 문제점도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장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시스템으로 바꾸고 성숙시켜 창의적 사고와 통찰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둘째, 국민적 통합이 시급하다. 노소, 남북, 이념, 빈부격차 등으로 행복할 수 없는 ‘분노의 사회’가 치유되지 않고는 초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셋째, 창의적 생각과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많은 리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관료주의 벽을 넘어 설득과 협상력 그리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가 많아지면 불행해 진다.

넷째, 정직과 인성을 갖춘 교육이 바로 서야한다. 개인의 성찰을 넘어 공동체의식의 중요성과 도덕적 가치가 강조되어야 한다.

다섯째, 지속적 혁신과 미래지향적 사고를 갖춰 4차 산업혁명을 슬기롭게 이겨나갔으면 한다.


터키에 관한 여섯번에 걸친 긴 글을 읽어 주신 독자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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