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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못난 조선, 붕당정치로 망했는가?

조선이 망한 것은 붕당이 아닌 외척 독재때문이다

by 김진혁

4월 4일 못난 조선, 붕당정치로 망했는가?

역사는 하나의 문명이 자신의과거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제공하는 지적인 형식이다 _요한 하위징아


조선시대에 당쟁이 생긴 것은 붕당정치가 시작된 이후부터다. 붕당정치는 선조 때인 1575년에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면서 시작됐고, 이후 225년간 지속되다가 1800년에 정조가 죽으면서 종결됐다. 그리고 순조・헌종・철종 대의 외척 독재 60년을 거치면서 조선은 망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당쟁이 아니라 외척 독재란 뜻이다. _ 박영규, 「조선붕당실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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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인들은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영규 저서 <조선붕당실록>에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조선 붕당으로 인하여 많은 병폐가 있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그러한 분열과 대립에 균형을 지향하지 못하고 외척들이 견제 세력 없이 조정을 좌지우지하였기에 망국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조선 망국의 주범을 당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 학자들에 의해 주입된 식민 사관의 영향이라고 한다.

오히려 붕당은 왕도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서로 팽팽한 대립과 견제가 유지되는 정치형태로 발전된 체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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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수긍이 되면서도 나름대로 조선이 멸망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첫째 이유로 조선후기 정조 사후, 이른바 소수가문의 권력독점 및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가 발전되지 못했다.

중세 서양은 르네상스의 물결이 휘몰아치고 과학문명의 발전과 신대륙으로 해양 진출하는 시기인 반면 조선은 고립된 채 세계정세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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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조선은 소중화사상이다.

정통 중화사상의 경우 비록 명이 망했지만 청이 중국의 계승자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자부심이다.

사상의 빈곤과 그릇된 노예근성이다.

또한 올바른 리더를 양성하지 못했고 문맹율을 줄이는 국민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서양의 과학문명을 무시한 채 우물안의 개구리식의 쇄국정치를 펼쳤다.


셋째, 유교철학과 성리학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공자(BC 551-BC 479)는 인의예지를 통한 국가의 이념과 국민들의 학문과 수양을 강조했다.

인(仁):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의(義): 옳은 일을 하려는 마음

예(禮): 근본으로 돌아가라

지(智): 사물을 꿰뚫어 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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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사후 150여년이 지난 맹자(BC 372-BC 289)는 인의예지를 구체적으로 쉽게 설명한다.

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의 수오지심(羞惡之心): 자신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

예 사양시심(辭讓之心): 염치를 알아 양보하는 마음

지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과 잘 잘못을 가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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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의 뿌리는 중국 송나라 주희(1130-1200)에서 이어받았다.

중국의 성리학은 넓은 땅과 여러 민족을 화합하기 위해 우주와 자연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조선은 우주는 뒤로 한 채 사람과 세상을 중심으로 바뀌었다.

1589년 선조 22년 정여립 대동계 모반사건으로 서인 정철은 동인 연루자 1,000여 명을 처단하여 조선의 진보적 지식의 토양이 사라졌다.

효종 장례 때 소현세자와 강빈의 자식을 적통으로 보는 정통성문제(상복을 얼마나 입느냐?)로 남인과 서인의 목숨을 건 투쟁을 보면서 당쟁의 피해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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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역사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역사는 끝없는 토론과정이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질서와 의미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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