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세상을 구한 리더십
히틀러는 프랑스에는 이겼지만 양심에는 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린 히틀러는 프랑스 사람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파리를 초토화시킬 계획을 세우고 프랑스의 유명한 유적지마다 각종 폭파 장치를 설치해 놓았다.
히틀러는 파리 주둔군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 (Dietrich von Choltitz: 1894~1966) 중장에게, "연합군이 파리를 점령하기 전에 파리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944년 8월 25일, 히틀러는 파리를 불태워버리라는 자기명령을 9차례나 재촉하면서 곁에 있던 알프레트 요들장군에게“파리는 불타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하지만 콜티츠는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했다.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과 수많은 유적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인류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히틀러보다는 하늘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콜티츠는 중립국 스웨덴의 총영사 노르드링크를 은밀히 불러서“독일군 폭파 스위치를 올리기 직전에 연합군이 파리를 공격하도록 하시오”라고 부탁했다.
연합군이 파리를 향해 진격해오자 콜티츠의 부하가 집무실로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장군님, 연합군이 곧 파리에 들이닥칠 것입니다. 어서 폭파명령을 내려주십시오.”콜티츠 장군은 부하의 말을 뒤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것은 도시를 파괴하지 말라고 하는 세미한 하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히틀러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결심하 고 자기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나는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오”라고 말했다.
콜리츠는 파리를 불태우기보다 1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군에 항복하는 길을 선택했다.
파리를 구한 그였지만, 프랑스 시민들은 냉담했다. 과격한 군중은 욕설을 퍼부으며 침을 내뱉고, 돌을 던졌다. 그러나 콜티츠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콜티츠는 상황의 논리보다는 변치 않는 양심의 소리를 따른 위인이다.
콜티츠 중장은 "히틀러를 배신할지언정 인류는 배신할 수 없었다" 라며 파리의 수많은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명령에 불복종을 한 것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징역을 살았으나 ‘파리의 구원자’라는 별칭이 인정되어 2년만 복역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21년이 흐른 1966년 여름, 콜티츠가 눈을 감았을 때 무덤 앞에는 파리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파리를 불태우라는 부당한 명령에 끝까지 항거하며 인류문화유산을 지켜낸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기막힌 이야기와 콜리츠의 일대기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 작품인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Paris Brule-t-il?)'란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프랑스 파리는 코로나로 인해 불타고 있다. “바이러스에게 바캉스는 없다.”는 슬로건으로‘이동 제한’을 하고 있다.
부실한 공공 의료 체계로‘응급실이 응급상황이다’기독교의 최대 기념일 중 하나인 부활절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려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전례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극복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며 선택이 없다면 성공도 없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선 우리에게 독일의 시인 괴테의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우유부단한 인간이다”라는 말로 경종을 울린다.
존 맥스웰의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 내 가슴 속에서 두 가지 본성이 싸우고 있다. 하나는 사악하고, 하나는 신성하네. 하나는 사랑하고 하나는 증오하니, 내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길 것이다”라며 평소의 올바른 결정을 위한 습관을 강조한다.
결단의 순간에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쫓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도자로서 눈에 보이는 현실에 급급하기 보다는 역사와 희망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니라.”
(딤후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