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는 두만강 이북의 땅으로 희망과 비극의 땅 난민의 역사 현실
울지 마라, 연해주 동표여!
1. 나는 간다. 머나먼 곳 우랄산으로/ 조국을 위해 승리를 위해 나는 간다.
이 내 몸은 조국을 위해 몸 바친 몸이/ 사랑하는 너도 또한 몸 바치거라.
2. 우랄산에 수많은 목재를 다 눕혀놓고/ 이 앞동산 남쪽까지 다 없어졌다
마리아야 마리아야 너 울지 마라/ 내가 갔다 올 때까지 너 울지 마라.
-조국을 떠난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부른 <이별의 노래>
올해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집단 이주 당했던 80주년의 해이다.
5만 여명의 해외 동포들이 연해주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고려인이라 부르면서 난민으로 사는 애환의 숨결이 남아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의 슬픈 역사로 점철하게 된 것은 약소국에서 태어난 죄밖에는 없음에도 3~4세대 후손들은 한국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와 문화도 잊혀 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유일한 분단국이지만 선진국이자 하루속히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룰 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와 함께 화해의 축배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현실은 경제 위기와 함께 사상과 노소, 빈부, 직업에 따른 사분오열되어 미래가 어두운 안타까움에 있다. 한 나라의 흥망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분열과 질시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인류에 관한 지식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연해주의 역사, 이주민의 카레이스키화 및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되 집어 보고자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박한 바람의 일환으로 잊혀져 가는 고려인 후손들과의 이해와 사랑을 실천하고 싶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해주 이주민의 카레이스키화
우리나라가 코리아(Korea)라 불리는 것의 유래는 고려에서 왔다. 고려는 왕건이 신라말에 분열된 한반도를 다시 통일하여 세운 왕조(918∼1392). 왕건이 후 34대 공양왕(恭讓王)까지 해외문물과 교역을 활발히 이룩했다.
고려의 건국은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발해가 쇠퇴하는 시기로 그 이탈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고려라는 국호를 내결었다. 원래 고유명사는 ‘구려’이고 앞의 ‘고’는 미칭(美稱)으로 덧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구려’는 여러 계통 알타이어에서 ‘성읍(성읍)’ ‘고을’ 을 의미하는 ‘khor’, ‘kor’ ‘kuru’ 라는 말에서 나왔다.
중국동포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동포라고 부른다.
고려인이 아직도 존재하는가?
고려라는 말이 잊혀진지 오래 되었음에도 아직도 고려인들이 있다는 것은 생경하다.
즉 고려인이란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우크라이나·벨라루스·몰도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등에 살고 있는한국인 교포들을 말한다. 스스로 고 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라고 한다.
연해주는 우리에게 희망의 땅이자 배신과 비극의 땅이었다.
언제부터 연해주로 이주했을까?
이주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정치적 불안과 먹고 살기 힘든 시기인 1863년(철종 14),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 강(江) 유역에 정착하였다. 이후에도 이민은 계속되었는데 거의가 농업 이민이었다 일제침략기에는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망명이민이 이어졌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지방의 한인들의 모습이 일본인들과 비슷하다는 소수 민족에 가혹한 분리 차별 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들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는데, 당시 고려인 수는 17만 5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1만 1000여 명이 도중에 숨졌다. 이주를 거부한 4,000여명의 동포들은 즉석에서 죽음을 당했다.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집단농장을 경영했다. 그 결과 러시아 내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