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Apr 08. 2024

나이가 주는 첫 번째 선물 <장독대>

된장을 담그게 되는 나이는 몇 살 쯤일까?

믿을 수 없지만 나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통통한 몸집에 얼굴이 하얘서 꽃돼지라고 불리던 이십 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꽉 찬 오십 후반이 되었다. 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된장을 담그게 된다. 주변의 지인들이 된장 담근 얘기를 하기에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을 알기에 선뜻 실행을 못했다.


먼저 된장 담그기를 시작한 지인의 적극적인 추천(지금 홈쇼핑에서 메주를 팔고 있다는)으로 메주 네 덩이와 생수 여섯 통과 소금 한 봉지가 들어 있는 패키지를 주문하고 말았다.  


시골집의 뒷마당에 있던 장독을 씻고 소독한 뒤, 메주를 닦아 소금물에 담가 떠오르지 않도록 나뭇가지로 눌러 놓았다. 그러면 된장 담그기는 일단 끝이다. 건고추 하나와 조그만 숯 조각 하나가 같이 왔기에 그것도 닦아서 띄워놓았다. 티브이에서 본 대로 항아리 입구를 면보로 덮고 끈으로 친친 감아 잘 덮었다.


된장이 맛있으려면 40여 일이 지나서 장 가르기를 하고 간장을 맛있게 먹으려면 석 달을 두면 된다는데 아무래도 된장 맛이 중할 것 같아서 2월에 담근 메주 항아리를 열어 보았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눌러놓았던 메주는 커다란 항아리 안에서 둥둥 떠올라 메주의 윗부분에 초록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역시 대충 하는 나의 일솜씨는 장 담그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미심쩍었지만 초록 곰팡이를 닦아내고 손으로 메주를 치대어 다른 항아리에 담았다. 지인들이 일러준 방법대로 다시마를 된장 위에 덮고 소금을 두어 줌 뿌려 놓았다. 간장은 다려도 되고 안 다려도 된다는 글을 읽었으나 곰팡이가 있었으니 다리기로 했다. 커다란 냄비에 간장을 붓고 약한 불로 달이되 끓이지 말라는 글을 다 끓이고 난 다음에야 읽었다. 팔팔 끓이면 간장 냄새가 난다고 한다.


장 담그는 핵심은 메주를 잘 눌러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임을 해보고서 알았다. 검색도 해보고 시누이에게 물어보니 메주에 곰팡이는 괜찮다고 해서 된장과 간장 두 개의 항아리를 두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뒷마당은 그늘이 져서 된장이 숙성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지난 주말에는 앞마당에 장독대를 만들기로 했다. 쑥 캐러 같이 간 시누이는 당장 해보자며 아침을 먹자마자 주차장에 있던 벽돌을 가져왔다. 남편은 왜 앞마당에 장독대를 만드냐고 항의성 질문을 했지만 무시되고 빠른 속도로 벽돌은 채워졌다.


거실에 앉아 앞마당의 장독대와 장독이 햇볕을 받으며 반들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고즈넉하고 편해지는 걸 느끼면서 '아!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었다. 내년에 담을 때는 가시오가피 가지로 완벽하게 엮어 눌러 메주가 떠오르지 않도록 잘해보리라 굳게 다짐했다.


 나이가 주는 첫 번째 선물인 장독대를 가지게 되어 슬픈데 기쁜 요상한 마음으로 된장 맛을 기다린다. 여름이 지나 가을 때쯤 먹으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된장은 더 맛있다고 한다.     



간장과 된장
돌단풍은 돌과 함께
깽깽이풀
목재화분에 심을 일년초 꽃모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