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수 해에 국가검진을 해야 해서 이달 초 건강 검진을 마쳤다. 2년 전에는 고혈압 전단계였지만 그때와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 건강한 식습관과 일상적인 운동으로 보낸 시간이었으므로 검진을 앞두고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나 좋아졌을까 기대감까지 가지고 혈액을 뽑았다.
이 주일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결과지를 손에 들었다. 궁금해서 가장 먼저 들춰본 당화혈색소는 5.8이었다. 2년 동안 6점대를 오르내리며 애간장을 태웠던 그 수치가 마침내 5점대로 내려왔다. 5.6부터 정상 단계지만 그동안 노력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수치였기에 기쁜 마음은 비할 데가 없었다.
고혈압 전단계도 정상이었다. 중년이 되면 흔히 쓰리고(고혈압, 고지혈증, 고혈당)라는 대사 질환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초대사량도 떨어지고 호르몬 작용으로 꼭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혈액 수치는 경계에서 깜빡거리거나 훌쩍 넘어서버리기 일쑤이다.
병원이 알려준 나의 혈관 나이는 49세로 만 나이보다 7살 적게 나왔다. 건강에 무지하고 미련한 자신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는데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 믿으며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나 자신이 또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아효능감이 하늘 높이 솟는 기분은 꽤 짜릿했다.
운동보다 더 힘들었던 식이 조절을 잘했던 것이 이번 검진에 좋은 결과로 나온 이유이다. 우리 집의 식탁지킴이 첫째가 자연식물식을 철저하게 하니 옆에서 같이 먹는 가족들도 냉이, 달래, 쑥, 시래기 같은 나물로 채워진 밥상을 끼니마다 먹었다.
주말이면 잔뜩 캐온 냉이로 나는 된장찌개나 냉잇국 밖엔 할 줄 모르는데 딸은 냉이볶음밥, 냉이덮밥 같이 다양하게 요리해서 맛있게 먹는다. 딸이 해준 새로운 반찬으로 먹으니 늘 하던 나의 반찬보다 훨씬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마른 당뇨인 내게는 딸의 자연식물식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항상 근심하던 혈당 수치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걸 확인하고 나니 일상이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건조한 피부에 팩도 붙이게 되고 기초화장품이나마 열심히 얼굴에 문지르게 된다. 일정이 없는 오전에 할만한 새로운 일과를 개발했는데 동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2층 카페의 창가에 앉아 가져간 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뭔가 쓰기도 하며 한 시간 반을 보내는 즐거움이 이렇게 쏠쏠할 수가 없다. 두어 번 해보고 나니 일주일에 하루는 꼭 이런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지난 몇 년 동안 갇힌 생활로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 혈당을 관리하느라 한동안 가라앉고 정체되었던 일상이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주민센터의 공사로 중단되었던 라인 댄스가 다음 달부터 다시 시작되고 새롭게 오카리나를 배워보기로 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 오카리나를 시골집 마당에 앉아서 불면 참 구슬프고 처량해서 좋겠다고 오랜 망설임 끝에 등록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하던 2년 전부터 주저하고 머뭇거리던 근력 운동을 결국 시작했다. 집 근처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으로 석 달 동안 주 2회 운동하기로 했는데 첫 수업을 해보니 허벅지와 뱃살이 당겨서 혼자서는 이렇게 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말엔 뭐 하시냐는 코치의 질문에 의도를 몰라 망설이다가 시골집 가서 농사짓는다고 있는 대로 말했다. 집에 와서 딸에게 물어보니 주말 수업을 진행하고 싶어서 물어봤을 거라며 "엄마, 귀엽다."라고 놀린다. 아무리 내가 미모의 중년이라도 아들 같은 코치가 내게 주말에 뭐 하냐는데 설마 오해했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