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가 올라오면 봄 농사가 시작된다.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가장 먼저 완두콩을 심었다. 다음 주엔 자색 감자를 심을 것이다. 다음 달부터 열무와 얼갈이, 상추씨를 뿌리고 4월 말에는 고추나 가지, 오이, 방울토마토 등 모종을 사다가 심는 것으로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
꽃밭에는 앙증맞은 싹들이 올라오는데 꽃들의 자리를 바꿔주거나 벽돌로 테두리를 새로 하는 등 가꿀 일이 손길을 기다리는 중이다. 텃밭과 마당을 돌보는 중에도 쑥을 캐고 뽕잎순을 따고 화살나무 순을 훑는 일들을 하노라면 길어진 봄날의 해가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이렇게 마당과 텃밭과 꽃밭을 새로운 마음으로 돌보게 된 건 오랜만이다. 재작년의 당뇨 진단과 손목 골절로 인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 보니 시골집의 모든 일이 일시정지가 되었다. 잔디는 풀을 이기지 못해 잡초에 점령당하고 꽃밭도 풀에 덮여 꼴이 아니었다. 주인이 신경을 쓰지 못해도 때가 되면 열리는 농작물이나 간간이 수확해서 먹는 정도였다.
올해는 시작부터 의욕에 넘쳐 남편은 언제부턴가 재미를 들인 가지치기를 눈만 뜨면 나가서 하고 있다. 남편의 깔끔한 일솜씨로 전지를 마친 나무들은 이발을 막 끝낸 것처럼 가지런하고 산뜻해졌다. 과일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울타리로 두른 화살나무까지 전지를 마치고 새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데크 아래에 있던 장미 화단을 없애기로 했다. 콧구멍만 한 화단이라도 잔디를 걷으니 풀이 자꾸 자라고 장미는 벌레가 끓는 데다 개화 기간이 짧아 주말에만 가는 형편으로는 시든 장미만 볼 때가 많았다. 장미를 삽으로 떠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테두리의 돌을 뽑아서 뒷마당으로 옮겼다. 장미가 사라진 화단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이번 여름 안에 곧 잔디로 뒤덮일 것이다.
뒷마당의 꽃밭도 올봄에는 새롭게 단장을 하려고 한다. 폭이 깊어 안쪽으로 들어가질 못하니 나무처럼 자라는 풀을 감당할 수 없었는데 벽돌로 길을 만들어 뒤쪽까지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손볼 예정이다. 꽃밭은 순전히 나의 영역이라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하려고 한다. 내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어서 힘은 들지만 잔소리가 많은 남편이 없으니 마음은 훨씬 가볍다.
비트나 아스파라거스 등 새로운 농작물을 시도하기보다는 우리 가족이 주로 먹는 익숙한 채소들로 텃밭을 가꿀 예정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얼갈이와 열무, 상추, 아삭이 고추와 조선 오이, 양배추 그리고 가지와 부추가 우리 텃밭의 주요 작물들이다. 집 앞 틀밭에는 이런 종류를 심고 넓은 옆밭에는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땅콩, 호박을 심는다.
비료를 주지 않고 비닐 멀칭도 하지 않아 동네의 다른 농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랄 때 우리 밭의 작물들은 크기도 작고 성장이 느려 속이 터질 때가 많지만 달고 맛있는 채소를 먹을 수 있으니 여전히 자연농법을 고집하고 있다. 고추가 한창 자랄 때 복합비료 한 숟갈만 뿌리 옆에 두면 고추나무가 되어 크고 많은 고추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도 우리 집은 얼마 안 되는 수확량으로 만족하고 마는 식이다.
그동안 농사를 지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올해는 열심히 가꾸어서 서울의 이웃집에도 넉넉히 나누어 줄 수 있을 정도의 수확을 기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농작물이 넘쳐서 탈이라는데 농사지은 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는 항상 제자리걸음인 이유가 둘 다 게으른 데다 체력이 없고 욕심도 없는 탓이라 생각한다. 절대로 실력이 없어서라고는 인정하지 못한다.
나의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딸들 중 하나가 곧 독립을 해서 여유가 생길 것이라 시골집에 머물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대충 되는 대로 짓던 농사를 이제는 야심 차게 할 각오이나 오직 하늘과의 협업만 남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