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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y 05. 2023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많아졌으면

[클래식 유나이티드_정 경 지음]을 읽었습니다

“나 오케스트라 합격했어!”


초등학교 3학년을 바라보던 작년 말. 

학부모 대기 교실에서 학교 오케스트라 오디션 중계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다, 합격자 발표 후 “엄마~!”를 외치며 달려오던 아이의 목소리가 지금도 크게 들린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만 차는 리본 넥타이를 드디어 받았다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아이의 표정을 보며, 엄마의 관심사를 이제부터는 아이와도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레슨을 받으며 피아노를 즐겼던 나는, 다른 악기를 배우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고 내심 많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연주하는 느낌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직장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잠깐 바이올린을 했었는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아이에게도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더랬다. 


아이가 오케스트라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며 친구가 아이에게 준 선물이 책 [클래식 유나이티드_정경 지음]이었다. 당시 친구는 11시에 EBS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정 경의 11시 클래식’에 빠져 있었는데, 아이가 관심있어하는 바이올린 부분이라도 읽어주면 더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보내준 선물이었다.


한창 바빠서 몇 개월이나 책꽂이에 모셔두기만 했던 책을 이제서야 펼쳐봤다. 


세계적인 한국인 연주가가 많아졌다는 것은, 아직도 설레기만 한 일이다. 중학생 때였을 거다. ‘정트리오’로 불리던 정명훈, 정경화, 정명화를 비롯하여 사라 장 등 외국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한국인 연주가들의 존재가 가슴 떨리고 신기했는데, 지금은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 연주가들이 너무나도 많아졌고 이런 현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애국심이 이런 걸까?


책에는 클래식 12개 분야 연주가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책장을 넘기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 가진, 자신의 직업을 넘어선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잔잔한 시간이 펼쳐진다. 그 중 첼리스트 양성원과 작곡가 최우정의 인터뷰에서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여기에 기록해 본다. 


"너는 나처럼 하지 말고, 네 길을 가야 한다."

“제가 야노스 슈타커 밑에서 4년을 공부하면서, 1년은 조수로 있었어요. 야노스 슈타커처럼 존재감이 강한 분들한테서 우리는 존경심에 무의식적으로 그분의 연주 스타일을 닮아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게 때문에 간혹 레슨을 받으러 갔을 때 “너는 나처럼 하지 말고, 네 길을 가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양성원은 양성원식대로 하라고요. 제가 제 소리를 찾을 수 있는 툴을 만들어주시는데 집중하셨어요. 즉,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내 목소리, 내 음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하셨던 스승님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항상 유의하며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_첼리스트 양성원 54p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 삶"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해요. 희생이라는 것은 달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진짜 축복된 삶이 바로 이런 삶 아닐까요?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 삶’은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 바로 첼로를 꾸준히 한다는 것, 많고 거듭된 연습, 매일 아침 남들보다 일찍 연습을 시작하는 도리밖에 없거든요. 모든 상황에서 축복이라는 것을 그런 각도에서 봤을 때 역시 이 길을 택하게끔 인도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또 하루를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_첼리스트 양성원 58p


"밸런스가 맞는 삶을 위해서는"

“밸런스가 맞는 삶을 위해서는 독서 시간이나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있어야 하고, 더욱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간 어슬렁거리면서 심심한 삶도 있어야 합니다.” _첼리스트 양성원 61p


"남보다는 나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

“남한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보다 저한테 아주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한테 아무 의미가 없으면, 아무리 그게 좋은 작품이라고 밖에서 떠들어도 금방 잊혀지지 않겠습니까?” _작곡가 최우정 118p


책에는 클래식 음악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연주가들의 고민들도 담겨 있는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클래식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의 삶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분 가량의 짧은 시간 안에 퍼포먼스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K-POP과는 달리, 클래식은 긴 호흡으로 감상하고 즐겨야 하는 음악이다. 작곡가의 삶을 이해한다면 감상의 깊이도 달라질 수 있고, 연주가에 따라서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계속 뛰어야 겨우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하루 중에 깊이 생각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별도의 다짐과 시간을 마련하지 않는 한 얻어내기 힘들다. 


지금의 나는 혼자 운전하는 차 안에서만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현재 상황에서는 혼자 운전할 때뿐이기 때문이다. 차 밖을 나서면,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하루의 일과가 바쁘면 바쁠수록, 짬을 내야 갖게되는 쉬는 시간은 쉽고 재밌는 가벼운 문화 컨텐츠가 잠시 스쳐지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바이올린에 관심을 갖고 오케스트라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에, 다시 한 번 고맙고 감사하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챙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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