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회사밖 인생 탐험기

by 김쪼

그동안 브런치를 이렇게 시작해 볼까 저렇게 시작해 볼까 어떤 콘셉트로 어떤 글을 써야 하나 끄적끄적 만 많이 했으나 오늘 김밥을 마는 과정을 담담하게 쓴 글(https://brunch.co.kr/@xharleskim/303)​을 보니 이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글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한다 생각만 많이 하고 정작 글을 쓴 지는 참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냥 며칠에 한 번이라도 뭐라도 적어보자. 가능한 한 솔직하게 가감 없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우연이라기엔 오늘은 제법 특별한 날인데, 그것은 회사를 그만둔 지 (내 말은, 정신적으로 말이다) 한 달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그만둔 건 7월 며칠이었지만 사실상 7월부터는 이미 마음이 노는 모드였기에..


2012년 1월부터 개발자로 일을 하기 시작해서 13년 하고 반을, 이직하는 몇 달을 제외하고는 계속 회사에서 일했다. 그렇게 쉬는 몇 달도 보통 다음 일 시작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거나, 인터뷰 준비를 하거나 해서 일의 연장 혹은 잠깐 휴가라는 느낌이었지 지금처럼 아예 일을 안 한다는 느낌과 달랐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개발자’ 혹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정체하고 있었다.


지금은? 누가 직업을 물어왔을 때 더 이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예전엔 그랬었다고 말을 한다.


몇 년 전에도 한번 일을 그만둘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캐나다 (밴쿠버)에서 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내려오던 중 국경에서 출입관리국 직원이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답을 했는데 직원이 “정말 그게 니 직업이냐?” 고 물어봤다. 명백히 인종차별적 태도였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고, 그게 내 마음에 불러일으킨 기분이었다.


분명 기분이 나빴는데 단지 그 직원의 태도뿐만이 아니라, 내가 아직 내 직업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단지 내 직업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정체성의 일부였고, 그게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대답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작은 사건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는데, 내가 개발자를 그만두기 위해서는 경제적 준비도 필요하지만 정신적으로 회사에서, 그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나의 정체성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급한 것은 아니었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것도 방법이었다. 하지만 왠지 내 인생이 회사 밖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튼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금요일 오후 1시 체육관 발코니에 앉아 공짜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시애틀 날씨는 요즘 제법 덥고 쨍쨍하지만 발코니에는 파라솔 그늘이 있어서 시원하다. 오후에는 장을 보고 주말 피크닉을 위해 어제 본 글을 참고하며 김밥을 말 생각이다.


그리고 이 브런치는 아마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일상과 생각과 과거 회상 및 망상들을 엮어서 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