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사 되기

용기와 응석과 무모함 사이 어딘가

by 김쪼

이틀 전엔 Rattlesnake ledge로 그룹 하이킹을 다녀왔다. 영어가 서툴러 그룹이 클 경우에는 사람들과 얘기하기가 힘든데 5명밖에 안 되는 작은 그룹이라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Erin이라는 이름의 하이크 리더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길래 커리어 전환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번 달은 놀고 있다고 답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지만 좀 더 손에 닿는 일을 하고 싶어서 (문자 그대로!) 마사지 세라피스트가 되려고 한다고. Erin은 걸음을 멈춰 뒤돌아보더니,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게 대단한 용기라고 말해줬다.


미국 사람들은 언제든 이렇게 긍정적이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식으로 말을 한다. 처음엔 좀 닭살이다 왜 저러냐 싶었는데 요즘엔 나도 이런다. 그냥.. 겪다 보니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데, 서로서로 좋은 말 해주는 게 기왕이면 더 좋지.


아무튼 고맙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이게 용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만둘 즈음 해서는 정말이지 손가락 까딱 하기도, 한 줄의 코드를 작성하기도 싫을 정도로 개발자 일이 싫어졌었기 때문이다. 개발자 일이 싫어진 것인지 회사가 싫어진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걸 구분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것조차 싫을 정도로 의욕이 0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동안 벌이가 좋았던 덕분에 한동안 수입이 없어도 버틸만할 정도의 경제적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아마 그게 아니었더라면 어떻게든 버티거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즉, 나는 내가 혜택 받은 환경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마음속의 목소리들이 ‘그래, 이건 용기가 아냐, 앞뒤 생각 안 한 무모함이거나 일하기 싫다는 응석일 뿐이지.‘ 하고 구시렁거렸지만, 나는 요즘엔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용기라고.

돈이 더 많아도 두려움 속에 살기를 택하는 사람도 있다고. 애정이 조금도 없는 일을 하며 매사에 불평불만인 사람들, 그러면서도 일을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용기는 꼭 지혜로우리란 법도 없고 성공을 보장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용기는 이야기를 다음 챕터로 진행시키고 사람을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보다 더 똑똑하거나 더 강한 동료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가장 용감한 것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삶의 챕터에서 용기를 택하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마사지사로써 전혀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방 부상으로 일을 못하게 되거나 코딩보다 더 빨리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손님들은 진상이고 고달프고 박봉인 직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고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때 인생의 다음 챕터로 나아갈 방법을 다시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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