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 기록
이전 직장에선 직원 복지로 온라인 상담/코칭 서비스를 제공했다. 연 20회까지 온라인 상담이 무료여서 아주 알차게 잘 써먹었다. 보통 상담/코칭의 목적을 정하고 6회 정도 한 상담사/코치와 진행을 하고 나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평가를 해서 졸업을 시킨다.
상담을 시작한 것은 별거를 시작한 직후로, 이사와 이혼 과정을 포함해 여러 가지 생활의 변화가 버겁기도 하고 삶의 방향성도 모르겠어서 ’ 이거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 오기 아주 딱 좋겠는걸?!‘ 하는 느낌이 들어 예방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맨 처음은 생활을 바로잡는 것 위주로 코칭을 신청해 6회를 진행했다. 주요 목적은 이사/이혼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미루지 않고 잘 진행하며 혼자 건강하게 사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었다. 이 코치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너무 기계적인 코칭 위주라 나에게는 좀 더 감정을 다뤄줄 상담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상담을 신청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상담사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케이티라고 해두자. 케이티는, 이상했다. 나의 얼치기 진단에 따르면 그녀 자신이 뭔가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듯했다. 내가 영어 표현을 뭘 잘못했는지 뭔가 오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이혼 얘기를 하고 있는 데 갑자기 벌컥 감정적이 되더니 자신의 가정이 얼마나 충실하고 자신이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열변을 토했다.
또 케이티는 아무래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너 친구도 없고 집에만 있지?! 그러니까 당연히 우울하지!!” 하고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중얼중얼 변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장 짐 캐리 주연의 <예스맨> 영화를 보고 주인공과 똑같이 하라고 말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사람의 권유에 다 예스라고 대답해야 하는 주술에 걸리는 바람에 각종 동호회 모임에 다 나가고 온갖 수업을 수강하는 처지가 되며, 이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과 삶의 변화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녀는 나에게 매주 새로운 모임에 나가고 다섯 명 이상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고 보고하라 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하면 대놓고 짜증을 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이벤트 셰어링 앱을 세 개를 깔고 시간이 맞는 모임에 다 나가기 시작했다.
자전거 고치는 법 알려주는 모임, 명상 모임, 등산 중 곰 피하는 법 알려주는 강연, 로컬 바의 밋업, 살사 댄스 모임, 라테 아트 만드는 법, 차 블렌딩 클래스, 잡초 뽑기 봉사활동, 꽃꽂이, 동네 보드게임 정모, 등등
마침 또 나는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무척 바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온갖 모임에 나가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시간에 케이티가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비디오콜을 켜고 삼십 분을 기다렸다. 원칙적으로 상담사는 십 분이 지나도 내담자가 로그인하지 않으면 전화를 걸게 되어 있으며 그 전화도 받지 않으면 노쇼 벌금을 청구하게 되어있었다.
다음 날 케이티는 자신은 내내 비디오 콜에 로그인해 있었으며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던 모양이라 주장했다. 케이티는 전화도 걸지 않았고 나에게 벌금을 물리지도 않았기에 나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했다. 신뢰가 깨진 이상 상담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상담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냥 그녀가 싫었다. 어떻게 그만둘지 궁리하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튼 그걸로 케이티와의 만남은 끝이었고 다음 상담사는 여러모로 훌륭한 사람으로 나에게 긍정 심리학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전 글에서 쓴 바와 같이 나는 칭찬과 격려가 잘 먹히는 사람인지라 이 상담에서 배운 것들을 아직까지 유용하게 많이 써먹고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대, 나의 인생을 가장 많이 바꾼 사람은 케이티였다. 나는 더 이상 낯선 모임에 가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화에 제대로 끼지 못하거나 말실수를 해도 자책하지 않는다. 잘 되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망한 모임도 있는 법이고 누구나 어색한 순간이나 대화가 잘 안 되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그냥 또 다른 날, 다른 모임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케이티를 생각한다. 지금 같았으면 그녀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관계도 있는 법이다. 다른 사람,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