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기 두려운 방향이 앞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나에게 선명하게 떠오른 말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책장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것과 같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머물고 싶은 순간, 아름다운 구절들, 마음에 새기고픈 문장들이 있다. 잠깐동안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무한정 머무를 수는 없다. 처음 그 문장을 읽었을 때의 마음을 계속 잡아둘 수 없다. 문장은 빠른 속도로 평범해지고 더 이상 처음의 빛나는 색채를 띄지 못한다. 다음 페이지로,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계속해서 넘길 때에만 책은 살아있다.
삶도 그런 것 같다. 같은 시절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다.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억지로 잡아둘 수도 없다.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갈 때만 삶은 살아있다.
문제는 때론 그 앞이 어디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개발자로 어느 정도 일한 사람들이라면 다 경험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코딩을 직접 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점점 일과가 다른 일들로 채워진다. 각종 디자인, 미팅, 멘토링, 코드 리뷰, 디자인 리뷰 등등에 치여 일주일에 몇 시간 코딩하기도 힘들었다.
몇 년 동안 나는 개발자가 시간이 지나도 코딩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맞는 방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이외의 요구들에 저항했다. 몇 날 며칠 집중해서 버그를 잡고 코딩을 하던 몰입의 순간들을 늘 그리워했다.
미국 기업 문화가 한국과 여러 가지 다른 점들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직원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자꾸 물어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덕분에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고 늘 투덜거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항상 ‘이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냐’고 물어본다. 만약 아니라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래서 어느 날 내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여있었다. 하나는 더 위로 올라가 프로젝트와 팀을 책임지는 프린시펄 엔지니어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 범위를 줄이고 보다 개발에 집중하는 길이었다. 내가 오랜 기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지가 드디어 주어졌다. 원한다고 말만 하면 다시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방향이 ‘앞’이 맞나?
매일 코딩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코딩하고 디버깅하는 삶은 충실하고 아늑하다. 나만의 작은 성 같은 시스템을 쌓고 기능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흐뭇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삶은 지나간 과거의 냄새가 났고 어딘가 답답하고 죽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향을 돌려 프로젝트 리드가 되는 삶을 상상했다. 남들 앞에서 이걸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자기주장을 하고 팀원들을 끌어들인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열정과 시간을 내 아이디어에 배팅하게 만든다. 성공의 희열과 실패의 책임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무서웠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트랙을 올라가는 것처럼 긴장되고 식은땀이 났다.
그때 깨달았다.
마주하기 두려운 방향이 ‘앞’이구나.
물론 ‘앞’은 계속해서 바뀐다. 이야기의 흐름이 계속 바뀌는 것처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프린시펄 엔지니어로 계속 살아갈지 회사 밖으로 나갈지의 기로에 섰다.
프로그래머의 삶은 계속 바뀌고 있다. AI의 발전 속도는 놀랍고, 앞으로 근 몇 년간 큰 변화들이 있을 것이다. 궁금하긴 하지만, 두렵진 않았다. 그냥 하는 소리로 “AI도입되면 나 정도 코딩 실력으론 잘릴 거야”같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 밖의 삶은 두려웠다. 한 번도 조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고객을 만나, 나라는 사람 자체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무서웠다. 회사 이름과 좋은 직업이라는 타이틀 없이도 내 자존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래서 이 방향이 나의 새로운 ‘앞’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