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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헬 May 03. 2021

초콜릿 칩 쿠키 정도는 먹어 줘야

지금 번역하는 책은 번아웃을 이기고 성과를 최고로 끌어 올리는 법을 다룬 자기계발서이다.

사례와 연구, 실험이 많이 나와서 용어의 정확한 쓰임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나도 번아웃의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지라 솔깃한 얘기가 많다.



오늘 번역한 부분에서는 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실험이 나왔다.

요약하면,

실험 참가자들을 초콜릿 칩 쿠키 냄새가 진동하는 방 안으로 들여보낸다. 참가자들이 자리에 앉으면 쿠키를 갖다준다. 다들 하트가 된 눈으로 쿠키에 눈독 들이고, 집어서 냄새까지 맡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쿠키는 한 그룹에만 준다. 나머지 한 그룹에는 눈앞에 쿠키가 있는데 무를 주고 먹으라고 한다(무를 진짜 다 먹었을까? 미국 사람들 무 질색하던데. 어쨌든 쿠키를 못 먹은 것만은 분명하다).

잔인하기도 하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참가자들이 각각 쿠키와 무를 먹고 나면 문제를 준다. 당연히 풀리게 생긴 문젠데, 실은 풀 수 없는 문제다.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무를 먹은 그룹은 8분 정도 앉아서 19차례 문제를 다시 풀었고,

쿠키를 먹은 그룹은 20분 이상 앉아서 33차례 문제를 다시 풀었다.



무를 먹은 사람들은 쿠키를 참는 데 뇌의 에너지를  다 써 버렸지만, 쿠키를 먹은 사람들은 쿠키를 먹고서 뇌에 연료를 가득 채웠으므로 문제 푸는 데 훨씬 더 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는 게 실험의 결론이다.



나도 휴식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어서   자리에 앉으면 45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45분이 되면 미끄러지듯 의자에서 내려와 바로 뒤에 대기 중인 카펫에 누워 쪽잠을 자거나, 기운이  있으면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얼른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15분을 번역이 아닌 다른 걸 한 뒤 다시 45분을 일하는 식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런데, 뇌를 제대로 굴리려면 초콜릿 칩 쿠키 정도는 먹어 줘야 했던 건가?

그 정도는 돼야 번역에 막 불이 붙는 거였나?



그래서 오늘은 마당으로 나갔다. 주말이 아니고서는 그림의 떡처럼 거실 유리문 밖으로 구경만 하는 마당,

쿠키는 없고, 요즘 사랑하게 된 몰모랑시 건타트체리와 아몬드를 들고 데크에 앉아서 15분 동안 바람 좀 쐤다.



오월이 벌써 사흘이나 지났구나.



아몬드 찍으려고 했는데 초점은 마실 갔다 사람 소리 듣고 대문 밑으로 기어 들어오는 오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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