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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Oct 14. 2019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

100가지의 새로운 경험 프로젝트 #3


2019년 10월 13일 일요일


어느 일요일 오후. 스터디 일정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집에서 25분~30분 정도의 거리였다. 평소에는 여유롭게 가다가 오늘은 시간을 딱 맞춰 가기로 했다. 집에서 이것저것 할 일도 많았기에. 그렇게 집을 나서서 지하철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지갑을 놓고 온 것이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가방에 항상 지갑을 넣어두고는 하는데 오늘은 색다른 분위기를 위하여 다른 가방을 들고 나왔다. 새로 산 가방이었기에 더 들고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서 집에 지갑을 놔두고 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간을 딱 맞춰서 나왔기 때문에 집에 갔다 오려면 약속 시간에 너무 늦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집에 가서 지갑을 가져온다는 생각은 접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선택권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지하철 내에 있는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해서 5천 원 정도를 계좌 이체해드리고 현금으로 좀 바꿔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에는 삼성 페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연동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대중교통 안심카드인 티머니 카드를 3천 원에 구매하고, 거기에 2천 원 정도를 충전해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부탁을 드려볼까 하다가 방금 막 티머니 카드를 충전하신 어느 아주머니께 한 번 여쭤봤다. 그러나 말을 걸자마자 바로 거절을 당했다. 마음은 급하고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아저씨께서 티머니 카드를 충전하는 것을 보고 기다린 뒤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이야기를 조금 듣다가 자리를 뜨는가 싶더니 "학생, 얼마 정도 필요해?"라고 뒤돌아서 물어보셨다. 그래서 정확한 액수는 잘 모르지만 "5천 원 정도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돈을 환전하는 곳을 찾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께서는 현재 현금이 1만 원권 밖에 없었기에 돈을 천 원, 5천 원짜리로 바꿔서 주시려고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하철 내 분식점에 1만 원권을 잔돈으로 바꿔줄 수 있냐고 여쭤보셨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저씨는 안 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가시려다가 이내 발길을 돌리시더니 1천 원짜리 누룽지를 구매하신 뒤 남은 5천 원과 1천 원 4장 중 '5천 원'을 한 장 주셨다. 그래서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바로 이체해드린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면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그것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렇게 5천 원을 건네주신 아저씨는 시크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갈 길을 가셨다.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지를 모르다가 우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멍하게 서있으면서 잠시 감동의 시간을 가졌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너무 고마운 분인데 보답할 방법이 없으니 그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몇 초 서있다가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이 생각나서 얼른 티머니 카드를 구매해서 충전한 뒤 얼른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불편했던 아저씨에 대한 기억

그러다가 문득 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9월 25일의 어느 날 밤 시간에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뭐지?"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넘어지신 것 같아서 일으켜드리려고 했는데 몸을 잘 가누지 못하셨다. 술을 조금 드신 상태였는데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일단 자리에 앉혀드리고 신발을 신겨드렸다. 그런 뒤 안정이 되실 때까지 이야기도 나누면서 일으켜드리려고 했는데 잘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았다.


집이 어디냐고 여쭤보니 OO아파트라고 하셨는데 그 장소 주변의 지리를 잘 몰랐기에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가뜩이나 운동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집에 지갑이랑 휴대폰을 놔두고 온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떡할까 하다가 택시를 태워서 집에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아저씨께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잘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부축해드리고 택시에 타려고 하니 기사님께서 술 취한 사람은 택시에 안태워준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술 취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아픈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정신도 멀쩡하시고.. 같은 말을 조금 반복하기는 하셨지만 말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아저씨가 가지고 계신 휴대폰으로 112에 전화를 걸어서 도와달라고 했다. 위치는 신성초등학교 앞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하시니 집까지 가는데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저씨 휴대폰으로 아내분이 전화도 왔었는데 도와달라고, 집까지 좀 바래다줄 수 있냐고 했다. 사례도 주신다면서. 아저씨께서도 되게 고맙다면서 지갑에서 1만 원을 꺼내 주셨는데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럼 전화번호라도 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나에게 5천 원을 주신 뒤 홀연히 자리를 떠나신 아저씨도 이런 마음이 었을까.. 그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일 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베푸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112에 전화한 뒤 다리가 불편하신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65세이고 경주 이 씨라고 했다. 막내아들은 31세에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그래서 자신도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행복하다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왜 미안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행복을 표현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 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경찰차가 도착했다. 그 후로 상황을 잘 설명해드리고 경찰관분들께서 아저씨를 집까지 잘 모셔드렸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누군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도왔기 때문에 다시 나에게로 그 마음이 전달된 것일지 모른다. 급박한 상황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그 손길을 누군가 잡아주었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 다만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하면 부정적인 것들이 더 잘 보일 테고, 긍정적인 것에 집중한다면 긍정적인 것들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이 세상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사회가 달라지고 있다지만 착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착하게 살다 보면, 착한 일을 많이 베풀다 보면 언젠가 그 일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언젠가 SNS를 통해서 6명의 사람만 거치면 전 세계 모두가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글을 봤다. 경험상 세상은 정말 좁다. 만날 사람은 어딘가에서든 만나게 되어있다. 제주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이 내 친구의 친구일 수도 있으며,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이 내 지인이 어릴 적부터 친했던 동네 친구일 수도 있다. 세상일 알 수 없는 일이니 지킬 것 잘 지키고 착하게 살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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