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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Aug 05. 2019

이중인격자의 어떤 하루

당신도 어떤 상황 속에서는 이중인격자가 될 수 있다.


살면서 '이중인격'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중인격이란 개인이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인격을 가지고 그것을 교대로 나타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중인격'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이 있는가? 정신분열, 사이코패스, 정신병, 성격 분열 등 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바로 '이중인격'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R.L.B.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1886년도에 발표된 괴기소설로 학식이 높고 자비심이 많은 지킬박사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모순된 2중성을 약품으로 분리하는 시도를 하다가 이중인격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사회 속에도 이중인격이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함의 상징인 사람이지만 그 속을 알면 추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존재할 테고(드라마 속 악역), 어려운 불우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는 기업이지만 환경파괴에 앞장서는 기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거에 당신은 이중인격이었던 적이 있는가? 이중인격자는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데 이런 단어를 들어봤거나, 직접 사용해 봤거나, 또는 직접 그 단어의 대상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이중인격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먼 과거로 돌아가 보겠다. 때는 2000년대 초중반의 어느 날. 그날은 11월 12일, 초등학생인 나에게 특별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바로 내 생일이었던 것이다.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부모님께서는 우리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주셨고 나는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러는 길에 집 앞 슈퍼에서 맛있는 과자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서 생일파티도 하고 이것저것 놀이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콩콩이(퐁퐁 또는 방방 또는 트램펄린)를 타고 오기도 하고. 생일인 나는 매우 들뜨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기는 하지만). 그러다가 같은 반 친구에게 세상에서 처음 그 단어를 듣게 된 것이다. 


바로 "너 이중인격자 같다!"라는 말이었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 단어에 대해 지금처럼 정확히는 몰랐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친구들에게 '틀림'은 곧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난 뒤로 '이중인격자 같다'는 이유로 조금은 놀림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친구들에게 '이중인격자' 같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먼 미래의 내가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내향과 외향 그 사이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평균의 기준에서 보면 내향적인 아이였다. 모든 경험이 이어져서 내가 내향적이었겠지만, 그러한 계기가 된 사건은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사건이다. 초등학교라는 곳을 처음 간 나는 아직 학교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잘못을 하여 선생님께 뺨을 맞게 되었다. 그 친구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선생님이 뺨을 때린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같은 반 친구가 선생님께 뺨을 맞은 기억은 몇십 년이 지나도 기억을 하고 있다. 


그 당시의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잘못을 하면 안 된다.',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등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건이 있은 뒤부터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학교'에서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집'에서의 나는 장난꾸러기이자 외향적인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내향적이지만 집에서는 외향적이라니? 하며 의아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떤 상황 속에서는 외향적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는 내향적이었던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특정 상황에 따라 외향적이 될 수도 있고, 내향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균주의 사고방식 VS 개개인성 사고방식


어떤 사람이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영혼 깊숙이 내재되어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든 변하지 않는다는 본질주의 사고방식인 평균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내향적인 아이였지만, 어떤 사람이든 특정 상황 속에서 내향적일 수도, 외향적일 수도 있다는 개개인성의 두 번째 원칙인 맥락의 원칙으로 보면 나는 '학교'에서는 내향적이고, '집'에서는 외향적인 아이였다. 


이러한 맥락의 원칙을 무시한 채 그저 평균의 기준으로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평균과는 다른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 테고, 평균에서 벗어난 것은 곧 '좋지 않다', '틀리다'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서는 내향적이고 집에서는 외향적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중인격자가 되었다. 



평균이 낳는 무수히 많은 오류들


위와 같은 사례처럼 <평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면 잘못된 해석, 오해를 낳기가 쉽다.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러한 문제들이 만연해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성적표 라던지, 수능 시험이라던지, 입사시험, 성격유형 분석평가, 아이들의 공격성 분석 등 평균의 기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류를 낳는다. 


평균의 종말, 공격성의 상황 맥락별 기질, p160

평균의 종말에 나오는 예시로는 공격성의 성향에 따른 맥락 별 기질에 대한 내용이 있다. 공격성 점수가 평균 0.8인 두 아이를 비교했을 때 평균 점수는 같더라도 두 아이가 가진 맥락은 서로 달랐다. 아이를 A, B라고 가정하면, A는 부모에 대한 공격성, 교사에 대한 공격성이 높은 반면에 남자아이에 대한 공격성은 평균 이하, 여자아이에 대한 공격성과 동물에 대한 공격성은 평균이었다. 이에 반해 B는 남자아이에 대한 공격성, 여자아이에 대한 공격성, 동물에 대한 공격성이 높았으며, 부모에 대한 공격성과 교사에 대한 공격성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위와 같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공격성을 평균적인 기준으로만 바라보고 같은 처신을 내린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맥락 별 기질을 잘 파악해서 A에게는 부모에 대한 공격성과 교사에 대한 공격성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B에게는 남자아이에 대한 공격성, 여자아이에 대한 공격성, 동물에 대한 공격성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아이의 공격적인 성향을 바꿔나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우리 아이가 그럴리 없어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흔히들 많이 들어본 얘기가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어요!", "내가 17년 동안 봐왔지만 우리 아이가 그런 짓을 할리 없어요!"등의 이야기들. 가족들이 '집'에서 보는 수현(가명)과, 친구들이 '학교'에서 보는 수현,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수현은 모두 다른 상황 속에 있으며 상황별로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통 본인이 알고 있는 수현이라는 아이를 수현이가 겪은 모든 상황에 대입해서 항상 그럴 것이라고 평균적으로 해석하고는 만다. 이처럼 자신의 아이를 더 잘 알고 싶다면 개개인성에 집중하여, 맥락의 원칙에 따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아는 수현이가 수현이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평균은 저물고, 개개인성이 피어난다


<평균의 종말>에서는 평균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한다. 이제는 개개인성에 집중해야 될 때이다. 개개인성에 제대로 집중하는 법을 안다면 기업의 성장은 물론 개인의 성장에 까지 정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개인성의 원칙에는 우리가 이때까지 살펴본 '맥락의 원칙'과는 또 다른 원칙 2가지가 있다. 그것은 들쭉날쭉의 원칙과 경로의 원칙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들쭉날쭉의 원칙은 지적 재능은 IQ와 같은 일차원적인 값으로는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으며, 같은 IQ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어휘력, 숫자 암기, 부호화 능력에 뛰어나며, 어떤 사람은 공통점 찾기, 행렬 추리, 숫자 암기에 뛰어난 것처럼 인간의 능력은 개개인별로 모두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경로의 원칙은 그 어떤 특정 목표라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길은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아기가 걸을 수 있기까지의 과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성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나뉘며, 자신이 원하는 직업의 커리큘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직업을 얻기 위한 방법은 천차만별이라는 말이다. 



너 자신을 맥락에 맞게 정확히 알라!


흔히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언이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아니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마당에 새겨져 있던 문구라는 것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의 세상은 '평균'이라는 둘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개개인성에 집중한다면 세상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내고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게 되며, 더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폴론 신전 마당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처럼 개개인성의 3가지 원칙(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에 집중한다면 당신이 이중인격자라 할지라도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막연한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개개인성의 시점을 통해서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한줄평 : 현시대를 지배하는 평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개개인성의 관점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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