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짧은 인턴 생활을 했다. 스펙을 위해서 들어갔던 건 아니었다. 단지 스타트업의 기업문화가 궁금해서 그 궁금증이 만든 빈 공간을 채우려는 지극히 개인적 목적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특성상 인턴에게도 단순 업무 이외에 창의적인 사고를 요하는 일을 분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에는 내 열정을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여름을 모두 그곳에 바치기로 했다.
물론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는 상이했고 그곳은 마치 글을 찍어내는 공장과 같았다. 볼트와 너트만 끼워 맞추는 일에서 의미를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 업무부터 차근차근 배워가야 하는 일반적인 기업이었다면 처음부터 묵묵히 배우는 자세로 임했을 것이다. 그것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혁신을 이루어 내야 하는 기업에서 인턴의 역할도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대가 커서 실망도 컸던 거다. 당장 나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속에서도 배운 게 많지만 당시에는 내 선택에 후회를 했었다.
'왜 나는 이 공부를 해야 할까?'
나는 궁금한 게 많다. 특히 인간과 세계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꿈이 있다면 이 의문에 내 나름의 결론을 내고 죽는 거다. 그래서 배움과 독서를 좋아한다. 그런데 공부와 시험은 싫어한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왜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누구는 좋은 대학을 가야 해서 또 누구는 행복한 삶은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별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은 높되 현실에 발을 데어한다는 신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숫자들을 등한시하는 것은 겉멋 든 핑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을 내 인생 저편으로 치워버리진 않았다. 그래도 그런 일에 열정을 갖는 건 여전히 힘들다. 처음부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데 내가 부족해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테지만 거기에 마르지않는 열정을 투입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아이고 의미 없다'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지금도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면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이것이 유행어인 만큼 우스꽝스러운 그림과 함께 말풍선에 이 문구를 넣은 이미지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다가 그런 이미지를 꺼내 쓸 때도 있다. 내가 하던 일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 생각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망상으로 이어진다. 그 망상은 때론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냥 생각이 많아지는 거다.
인간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희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전생을 기억해내 현생을 고칠 수 없고 현생의 노력으로 후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틀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생은 리허설이니까. 인생은 첫번째 리허설 그 자체다. 만약 인생이란게 완성할 수 없는 습작과 같다면 거기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니체의 철학에는 영혼회귀라는 개념이 나온다. 우리 인생은 다음생에도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카라멜마끼아또를 홀짝이며 글을 쓰고 있다면 다음생에도 현생을 찍어낸 것처럼 같은 커피를 시켜서 같은 글을 쓸 것이라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살면서 잘했던 일들은 어차피 또 되풀이될 것이기에 큰 의미가 없어진다. 나를 손가락질 하는 손가락들은 다음생에도 또 그럴 것이 분명하기에 그 손 끝의 날카로움에 조차 초연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인생의 의미는 바다에 뿌려진 재처럼 희미해진다. 무수한 점들이 모여 직선이 되는 것처럼 그런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니까.
나는 영혼회귀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적이다. 인생은 의미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의미가 배제된 게 인생이라면 세계의 톱니바퀴는 멈춰도 오래전에 멈췄을 것이다. 의미가 없는 곳에 진보와 발전은 없는 것이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것에 의미는 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도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명한 사실이다. '아이고 의미없다'는 건 무기력할 때의 넋두리일 뿐 내면면 깊숙한 곳에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단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 무언가'를 찾아야 의미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일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의미를 찾아가는 역동적인 과정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을 갈망하고 그것에 온 힘을 쏟는 그 의식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한 그 유의미함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나의 경우 처럼 내가 하던 일중 몇 가지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내 행동과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찾고 있다는 뜻이기에 오늘도 자신을 내려놓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다 든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5.01.30
글_사진_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