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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Oct 12. 2024

<골드만 케이스>(2023, 세드릭 칸)

정치가 아니라 절차

        이 영화를 보기 전 세드릭 칸 감독의 코멘트나 영화를 소개한 글을 보았을 때, 처음 떠오른 것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마이 백 페이지>(2001)였다. 이는 1969년 일본 전공투의 몰락을 가져온 야스다 강당 사건 이후, 비뚤어진 신념으로 살인을 한 대학생과 그 신념에 경도된 어느 기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더 골드만 케이스>에서 골드만이 저지른 일련의 사건들은 정치적인 신념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감독은 공산주의자라는 피에르 골드만의 겉모습보다 현재까지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재판 결과에 대해 더 관심을 보인다.


 여러 차례 현금을 강탈하고 두 명의 약사를 살해한 혐의로 골드만은 이미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자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옥중에서 자신의 수사 과정을 책으로 출판하고, 그 안에서 경찰을 인종주의자라 폄하하며 많은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어 낸다. 결국 여러 가지 정치적 정황으로 인해 항소심이 시작된다. 시종일관 재판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는 새로운 증인이 재판장에 설 때마다 주심 재판장의 뒤에 카메라를 두고 관객들을 그 자리에 앉힌다. 관객들에게 재판장의 입장이 되어서 이 재판을 바라보라는 의미인 거 같다. 여기서 골드만은 어느 쪽 증인이 나오더라도 끝없이 흥분한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항상 각을 세우는 골드만에 의해 변호사들은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에 접어들수록 피고인 골드만보다는 이 재판을 이끌어가고 있는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에게 눈길이 간다. 검사는 피고의 범죄를 판사 앞에서 증명해야 하고 변호사는 검사가 내미는 증거를 무력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판사는 법리를 바탕으로 피고의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해야 한다. 이 치열한 공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이 입증된 증거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공정한 절차를 통한 수사로 범인을 체포하고 범죄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속 재판 결과는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다. 골드만은 모든 절도에 대해서는 유죄를, 약사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아 종신형에서 12년형으로 감형된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 다툼이 벌어지는 영화의 후반부는 법정 영화가 지루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깬다. 재미있는 점은 검사들은 골드만이 주장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변호사들의 변론은 정치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다. 정치적 영향은 재판이 재개되는 데는 기여할 수 있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증인이나 증거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수사 절차의 공정함이 재판의 승부를 가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골드만보다 증거를 무력화시키는 변호사들의 변론 과정이 더 돋보인다. 


 변호사 혹은 검사의 질문에 대한 증언 하나하나에 흥분하는 피고인과, 재판 상황에 따라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방청객의 다양한 모습은 영화를 긴장감 넘치게 만든다. 실제로도 그리고 영화에서도 살인하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없으므로 골드만이 살인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모든 절차의 공정함을 증명할 수 없는 검사의 최종결론을 듣고 있으면 이 영화가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재판 과정을 이끌어 오기 때문에 오히려 씁쓸하다.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그래서 진실은 게으르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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