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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Oct 12. 2024

<해야 할 일>(2023, 박홍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해야 할 일

       '해고'란 말에는 곧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의미가 숨어 있다. 이 영화는 지방 중소중기업 4년 차 대리인 준희가 인사팀으로 발령받은 직후에 시작된, 정리해고 전 희망퇴직자를 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회사가 어렵다는 미명하에 희망퇴직을 강권하는 기업주가 쥔 칼자루에 준희가 속한 인사팀은 함께 매여있다. 회식 자리에서도 업무를 마무리하는 지나치게 성실한 준희가 일머리 있는 후배답게 해고의 기준을 세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기준을 가지고 인사과 사람들은 해당 직원들에게 저승사자가 되어간다. 준희의 아이디어에는 어찌 보면 이 사회가 가진 불합리하고 불평등함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숨은 의미와 함께 시간이 갈수록 이 과정은 버티는 것이 최고라는 아무 근거도 없고 정당성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이끄는 힘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인사팀 정 팀장역의 김도영 배우는 영화가 말하려는 의미와 함께 시간이 쌓여가는 얼굴로 이 모든 과정을 보여 준다. 연차가 높은 선배들의 희망퇴직을 받아내는 그는 무자비하고 차가우며 이런 상황은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던지는 강력한 한마디는 준희에게 누군가를 선택하라는 잔인한 물음이다. 이후 준희는 괴로운 감정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희망퇴직자가 한 명씩 늘어갈수록 누군가의 지옥이었던 정 팀장의 얼굴에 그 역시 스스로 빠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 잘하는 직장인인 준희는 그냥 쓱 보기에도 모든 선배가 꿈꾸는 후배인 듯 하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직속 선배가 시키는 어딘가 부적절해 보이는 모든 일을 군소리 없이 잘 해낸다. 하지만 그렇게 남들보다 부지런히 사는 준희의 어머니는 꽤 연륜 있어 보이는 노동운동가다. 뭔가 이율배반적인 위치에서 그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퇴직자를 받아내는 고난의 시간 동안 자신의 염치를 무너뜨리는 비밀이 가슴에 쌓이고 준희는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영화는 약혼자 앞에서 오열하는 그를 안타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피바람이 불 것 같던 영화의 끝은 어이없게 사람들의 예상을 비껴간다. 기업의 사주라는 사람들은 절대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압박하지만 처절한 제 살 깎아내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통을 함께 나누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반복될 해야 할 일만 남고 언젠가 또 도래할지도 모를 같은 상황이 뻔하게 예상된다. 해야 할 일이라고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약혼자의 손을 잡고 조심히 시위대로 걸어 나가는 준희의 마음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는 다짐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 혹은 어떻게 올지 모를 해야 할 일이 늘 주변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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