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카우>(2019, 켈리 라이커트)

역사 아래에 있는 사람들

by coron A

영화가 시작되면 거대한 화물 선박이 컬럼비아강을 유유히 거슬러 가고 있다. 화창한 현재의 강변에서 우연히 강아지의 안내로 나란히 누워있는 두 인골이 드러난다. 그 후 영화는 1800년대 초반 갓 탄생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던 미국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강아지가 코를 박고 파헤치던 강변이 우거진 숲으로 변하고, 버섯을 따고 뒤집힌 작은 도마뱀을 돕는 쿠키의 손이 나타난다. 오프닝에 비교해 조명은 한없이 어둡지만, 배경 음악은 잔잔하고 평온하다. 열심히 식용할 수 있는 버섯을 줍던 쿠키는 숲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 중인 벌거벗은 킹루를 만난다. 쿠키의 일행들은 야만의 시대를 대변하듯 지나치게 폭력적이지만 하찮은 도마뱀의 곤경도 지나치지 않는 쿠키의 선한 마음은 킹루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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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이 맞지 않아 보이는 일행들과의 여행이 끝난 정착지에서 쿠키는 신고 있던 낡은 부츠를 누가 봐도 눈에 뛸 만한 좋은 것으로 장만하고 여러 시선을 받는다. 그리고 선술집에 들어온다. 이 선술집의 모습은 여느 서부영화처럼 낯선 이를 주시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다툼도 일어난다. 하지만 여느 서부영화와는 다르게 술집 안에서 총싸움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주먹다짐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우르르 다 나가버리자 숲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킹루가 보인다. 그리고 그는 얼떨결에 떠안은 아기를 달래고 있는 쿠키를 발견한다. 킹루는 자기집으로 쿠키를 초대한다. 손님을 맞는 킹루의 옆에서 쿠키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정착지에 적응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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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자리 잡은 이 정착지에는 아직 변변한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들로 화폐를 대신하거나 여전히 물물교환이 벌어지는 원시성이 혼재해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초기 경제 사회지만 여전히 가진 자는 넘치고 못 가진 자는 없다. 그리고 이 정착지 포트틸리컴의 가진 자인 펙터 대장은 이 땅에 처음으로 소를 들여온다. 뗏목을 타고 유유히 섬으로 들어오는 암소를 보고 쿠키는 우유를 넣어 반죽한 빵을 생각해 내고 자신의 말로는 수많은 경험을 한 킹루는 이 퍼스트 카우의 젖을 훔칠 것을 제안한다. 킹루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는 아직 역사가 도착하지 않았고, 우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훔친 우유로 만든 쿠키의 튀긴 빵은 불티나게 팔리고 소의 주인도 맛을 보러 오는 지경에 이른다. 꼬리가 점점 길어지는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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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자본주의 논리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성정을 가진 쿠키와 개척자 정신이 충만한 킹루의 이 위험한 모험은 어떤 큰소리나 폭력적인 장면 없이도 영화 끝까지 마음을 조리게 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모험 사이사이에 보이는 정착지의 사람들, 소 주인인 팩터의 집에서 만난 아메리칸 원주민의 모습은 흔한 서부영화에서 보이는 이분법적인 인물의 형태를 벗어난다. 팩터 대장과 일상을 이야기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한 푼이 아쉬운 가난한 삶에도 달고 맛있는 빵 한 개를 원하는 사람들, 카메라가 비추는 이 사람들은 폭력적이고 대립하는 모습이 아닌 그저 일상속에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럼에도 계급에 찌든 자본주의의 내막을 보여주는 듯한 팩터와 변방에서 온 루비 대장의 대화 내용은 끔찍하다. 야만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영화가 어떠한 태도로 어떤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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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자본주의 맹점 중 하나는 탐욕이 사람의 눈을 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실수도 하게되고 삶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쿠키와 킹루의 꿈도 그렇게 역사의 아래로 흘러간다. 큰 성공을 하고 사회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드물다. 높은 계급이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의 아래에 존재한다. 이 영화는 이렇듯 서부영화로 읽을 수도 있고, 자본주의와 함께 태동하는 미국의 역사를 이름 없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역사 영화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할리우드가 그려낸 보통의 서부영화들 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다. 그리고 와이어트 어프같은 이름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아무도 알 수 없게 역사 아래 조용히 묻혀있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나 아님 더 루저로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에 미래에 자본주의의 첨병을 걷는 미국이 태어나고 있는 역사를 그리고 있다. 암소가 뗏목을 타고 거슬러 올라왔던 강을 머나먼 미래에 거대한 화물 선박이 강을 거슬러 도시를 향한다. 세상은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땅에서 만들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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