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야기
숲 속을 헤매고 있을 때는 숲을 보지 못한다. 역사도 그러하다. 그 역사 속을 함께 걷고 있을 때는 그것의 얼굴도 그것의 뒷모습도 볼 수 없다. 내게 보이는 것은 다만 그 역사를 함께 걷고 있는 이들과 함께 보는 광경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숲을 헤쳐 나오고서야 그 숲의 전체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내가 아직은 어려서 몰랐다고 생각된 이야기다. 서점 지하 비밀의 방에 붙어있던 에어리언 2의 시고니 위버 포스터와 서점 주인에게 느닷없이 싸늘하게 쏟아지던 백골단의 폭력,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는 선배의 희생이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나 역시 그 속에서 보았지만 나서지 못했던 강경대 학우의 이야기와 그 전후로 함께하는 모든 열사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그때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조차 내게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 세상을 전해주던 것들은 신문과 TV 속 뉴스와 그것과 너무나도 극강의 반대편에 서 있던 학교에 붙어있던 대자보들 뿐이었다. 그 모든 것에 의심이 필요했고 의심해도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팩트가 어디에 있었는지 보였다. 역시 숲을 벗어나니 겨우 숲의 모습이 그리고 그 숲을 비치고 있던 햇빛이 보였다. 결국 두 번째 이야기는 그 판단하기 힘든 숲 속에서도 서점 주인을 믿고 선배를 믿었던 후배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목표를 이룬다.
그 시대를 함께 했지만 정신없이 살아 나온 방관자들은 그들의 투쟁 그들의 절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그 온전한 가치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시대의 물결 속에서 그 광경을 이해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헬멧>의 '룸 서울'은 나에게 역사라는 것의 가치를 그리고 그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의 외침과 사람의 그 삶의 가치는 멀리 있지 않고 그들 하나하나의 치열한 투쟁 속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내가 살아가는 역사라는 숲을 어쨌든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어떤 방향으로든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이 개인의 역사든 한 국가의 역사든 세계의 역사든 마찬가지다. 어떻게 반복되는 가에 대한 숙제는 온전히 그 역사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놓여있다.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지 확 뒤로 밀려가 다시 걸어갈 이정표 조차 보이지 않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숲은 보지 못한다 해도 멀리서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타인은 볼 수 있다. 우리가 걸었던 길을 힘겹게 우리를 타산지석 삼아 걸어가는 이들도 있다. 잘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서 옆에서 나쁜 소릴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냥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쁜 반복은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내 생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