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랑을 하는가, 대화를 하는가?
사람의 속성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사랑 혹은 애증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해 사람의 본질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을 지극히 평범한 개개인간의 연정의 분쟁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로 보여주고 또 들려준다. 그런데 그 속에는 유리처럼 부서질 듯한 인간의 얄팍하고도 우울한 깊은 고독이 존재한다. 결국 사랑이란 것은 인간의 지난한 욕망과 그 욕망에서 기인하는 권력의 우위에 의해 휘둘리고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평범한 언어로 하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형식으로 표현한다.
무대 위 둘 혹은 셋 이상의 공간을 나누어 진행되는 에피소드들에서 각각의 배우들은 서로 적대적이거나 혹은 동경하며 갈망하기도 하는 위치에서 다르지만 같은 언어로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맥락이 다른 같은 언어를 내뱉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언어로 같은 욕망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엉켜버린 언어들과 상상을 자극하는 판타지들은 모든 사연들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혼란한 갈등을 더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랑이라는 이야기에서 어느 한쪽이 느끼는 외로움은 다른 한 쪽이 또 다른 상대방을 향한 다르지만 닮은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해프닝처럼 벌어지는 피트와 발레리의 만남, 닉에 대한 제인의 오해, 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레온. 그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그들에게서 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론 그 말들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기도 하고 결국 남는 것은 홀로 서 있는 그 자신들이다.
3막으로 구성된 이 연극 속에서 배우들은 몇 명의 역할을 함께 보여주는데 각기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욕망하는 어떤 공통적인 감정을 중심에 놓고 그 양극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반된 감각 혹은 의미를 가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부부관계에서 아내보다 조금 더 이기적인 피트를 연기하는 배우는 사라라는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닐과 닐을 버린 사라와 불륜에 빠져버린 존을 연기하는데 그는 신경쇠약과 과대망상에 빠져 자신에게 너무나 의존적인 아내를 떠나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기심이 닐 피트 존으로 점점 깊어진다. 쏘냐와 발레리의 관계도 재미있다. 극중에서 두 사람은 전문성을 가진 커리어우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이란 측면에서 완전히 대비된다. 레온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보이는 쏘냐에 비해 발레리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레온은 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또한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닉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남편에게 의존적인 제인 하지만 사라는 자신을 욕망하는 상대방의 깊은 사랑을 자신의 권력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각 배우들에게 주어진 역할들은 인간사에서 인연이 얽히듯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 묶여 있고 사랑이라는 현실과 삶의 본성을 놓고 보았을 때 한 배우가 연기하는 몇 명의 인물들은 사랑 혹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의 발현과 전개 그리고 그 결과가 해결인지 덧없음인지 모호한 더 깊은 갈등을 완성해간다. 상대를 향한 진심이라 여기던 것이 어느 순간 상처가 되어 나를 향하고 그러다가 결국 자신을 속이며 덮어버리는 말들, 끝이 없을 허공을 맴도는 목소리들은 단순히 남녀 간의 정사가 아닌 전체 인간사를 아우르는 오묘하지만 적나라한 운명을 이야기한다.
‘스피킹 인 텅스’ 그야말로 방언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평범한 사람들의 복잡하고도 내밀한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누가 어떤 의미로 그 말들을 내뱉든 나 아닌 타인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거기에는 그저 사라지지 않고 서있는 절대 고독이 버티고 있을 뿐이다. 미루고 미루려 하지만 결국 맞아야하는 진저리나는 내면의 고독, 하지만 우습게도 그 언어들은 돌아 돌아서 타인에게 내뱉는 사랑의 이야기며 일상의 이야기이고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늘 사랑도 하고 대화도 한다. 하지만 그 언어의 대부분은 허공을 맴돌 듯 안개 속을 부유한다. 이 연극은 이러한 모습들을 치밀하고 세련된 형식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