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IFF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on A Oct 13. 2023

<지난 여름>(2023, 최승우) BIFF 한국영화비전

카메라의 기다림이 담고 있는 것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거의 모든 장면은 여기가 정확히 한국의 농촌, 그것도 과거가 아닌 지금의 농촌 모습이다. 그 속에 이 영화가 픽션임을 말해주는 아주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원 아들, 서울로 시집간 맏이인 딸, 연로하신 할머니 그리고 아쉽게도 이미 세상을 등진 엄마가 이 영화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농사를 짓는 마을의 모든 사람은 농사의 성패는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 비단 농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유가 하늘에 있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위치든 한번 자리를 잡은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묵묵히 관찰한다. 이 고정된 카메라가 선명하게 움직이는 때는 두통에 시달리던 아들이 약국으로 약을 사러 갈 때인데, 이후 그는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공무원을 그만둔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일에 온 시집간 누나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의 태도와 유사한 듯한 생각을 말한다. “지 인생인데 지가 알아서 하겠지.” 영화는 시작과 함께 기계화된 모내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뭄’이라는 첫 소제목이 화면에 뜨고 하늘의 뜻이라 여겨지는 긴 가뭄이 시작된다. 모내기하기에 최악인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얼마나 성실히 살았나를 토로한다. 이 영화의 전체적 풍경은, 21세기지만 여전한 농촌이다. 


 하지만 아들은 무언가 조용히 다른 것을 시도해 보려 한다. 그 와중에 장마가 시작되고, 그는 깎여 나가고 있는 숲을 꿈속인 듯 걷고 걸어서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일을 예감하기도 한다. 거의 기계화된 농사의 과정이 영화의 시작부터 펼쳐지지만 그렇게 변화된 방식의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여전히 하늘을 살핀다. 비록 날씨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것이 농사이긴 하지만 아버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달리 아들은 자기 생각과 의지가 삶을 이끌어간다고 아주 조용히 항변하는 듯하다. 소소하게 이것저것 기웃거려 보던 그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날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돕는다. 어디든 자리를 잡으면 지켜보기만 하던 카메라는 아들의 행동으로 인간의 의지라는 미약한 의도를 잡아낸다. 영화는 마을의 아침처럼 고요하고, 어른들이 말하는 그 하늘의 뜻이 묵묵히 서서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 가뭄을 거처 장마를 지나고 풍요로운 수확을 한다, 역시 하늘의 뜻으로.


 어느 시골 마을에서 동이 트는 것으로 시작해 그 마을의 모든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영화는 오랜 세월을 농촌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의 일상을 조용히 담는다. 언뜻 다큐멘터리인가 하는 착각도 든다. 거의 기계화된 농사의 시작과 끝을 여전히 하늘의 뜻이라 여기는 사람의 마음을 카메라는 절대자인 것처럼 묵묵히 지켜본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게 사람의 의지가 드러날 때 작은 움직임을 보인다. 한 가족의 대사가 계절처럼 흘러가고 긴 세월 속 어느 한 여름날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켜켜이 쌓여도 어른들이 믿고 있는 하늘은 묵묵한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작은 의지를 지켜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