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큰다는 것

진로선택 8(자책감, 따뜻함) 성취와 성장 사이

나는 살아오면서 나를 보듬어 주기보다는 낭떠러지로 내몰면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를, 그리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괴로워하는 나를 탓하며, 더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나를 탓했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내가 무엇을 잘 못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면서 보완할 지점을 찾았다.


이러한 과정이 고통스러웠음에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나를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스스로의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보듬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 도달하게끔 질책하고 또 질책했다.

이런 내 모습이 많은 성취를 이루어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이 어려우면서도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학교사회복지 수련에서도, 직장 생활에서도 항상 시험 종료 5분전 텐션으로, 더 잘하지 못하는 나를 질책했었다.

특히.수련 때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외부의 강한 질책과 직면이 있었으므로 집으로 귀가하면, 세수하고, 양말을 신고 벗는 것조차 숨이 막혔다.

그렇게 나는 주마가편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당근보단 채찍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더욱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도 전보다 나은 나를 위해, 한 번 옮겼다는 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달렸다.

그리고 다른 학교 합격 등을 통해서 나를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발전하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질책하기엔

앞으로 가는 것도 무섭고, 그렇다고 주저앉기에는 뒤쳐질까봐 두렵고, 뒤로 가기에는 발전이 없는 선택을 하는 모든 순간의 내가 두려웠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 때, 한 성격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나를 미워해서는 마음이 클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도 사실.. 그리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성취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이런 생각에 조금의 변화가 일어났다.


저번주 일요일에 어떤 교회분께서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셨다.

그냥 손을 잡고 같이 목적지까지 길을 걸어갔다.

목적지 가는 동안 다른 동행분들과 함께 같이 이야기할 뿐 둘이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근데 그게 왜인지 모르게 위로가 됐다.


어제 교수님께서도 수업이 끝나고, 계단까지 가는 길에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완벽주의자의 특징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것도 어떤 감정적 동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위로가 되었다.


요즘은 그냥 나도 나를 믿지 못하고,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대해서 자신은 없지만,

나를 믿어주는, 잘한다고 말해주고, 내가 아니면 누가 논문을 쓰겠냐고 하는 그런 주변 사람들의 그 믿음에 살짝은 기대어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도 내적 동기가 아닌 외적 동기라는 측면에서 내 마음을 질책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결국 100퍼센트 자율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후회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자율적으로 그만둔다고 한들,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들 어떤 걸 하든 나를 탓하고, 괴롭힐 것이 자명하였으므로 그냥 외부 동기도 받아들여보고자 한다.


내 마음은 언제 커서 나를 내가 온전히 믿어줄 수 있을까.....

마음이 크려면 나를 내가 보듬어야 한다는데 너무 낯설고, 어렵다..


그치만 적어도 타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내 모습을 인식할 수는 있으므로,

조금씩 나를 스스로 다독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는 것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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