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선택 7. (인정욕)내게 또 한 번 주어진 기나 긴 시간
그렇게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한 채, 다니고 있던 교육대학원 2학차를 등록했다.
첫 주는 출석인정이 되지 않았고, OT 주간이기에 사실 1교시는 이 대학원에서 2교시는 저 대학원에서 수강하기도 했었다. 진짜 아무도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수업 내용이나 질은 별 차이는 없었지만, 옮기려는 교육대학원에 딱 가는 순간 난 느꼈다. '와.. 난 이걸 포기하지 못하겠구나.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목표가 전문상담교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게 대학에서 못 이룬 좋은 대학에 대한 미련을 채우려는 생각보다 더 강력한 인정욕구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OT 내내 고민했고, 옮기려는 대학원에서는 휴학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생이라며 유예기간을 준다는 이유로 휴학 승인을 하지 않은 그 기간까지 도합 2주간을 꼬박 고민했다. 옮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아까워하면서도, 교생실습을 다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학점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뜻 확정 짓기도 어려웠다.
이 가운데서 '사실 이렇게 고민할 동안, 원흉이었던 대학을 다시 가는 게 더 나으려나'하는 생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옮긴다고 한들 더 네임밸류가 좋은 대학원이 되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학기를 진행하는 동안 그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말로 가르쳐줄 때는 말을 그 생각이 안 나지만, 설명이 끝나고 학생들이 문제 푸는 시간에 곧바로 그 고민에 돌입하였다. 고민에 내가 완전히 잠식당했다. 학과 행사를 참여할 때도 '옮길 수도 있으니, 참석하지 않는 게 나으려나'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매주 마음일기 쓰면서 느낀 거지만, 좋은 감정이었던 날이 거의 없고, 이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날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 적어도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등록금 분납할 때마다 도 이제 그만 휴학할까 생각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한 학기에 반이 지난 시점에 한 번 휴학메일을 지도교수님께 보냈다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말에 따라 다시 고민하고 철회했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2학기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해는 아니었다. 교육공학, 교육사회 수업을 들으면서 실질적으로 흥미를 느꼈다. 특히 교육공학 교수님으로부터 '개념을 요약하고, 과목 간의 연관성을 생각하고, 통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참 잘하는 것 같다. 보기 드문 수강자다'라는 칭찬도 개인 피드백 시간과 공개적인 상황에서 몇 차례 받았다.
교육사회학에서는 기능주의, 갈등주의로 시작해서 현대의 신자유주의, 교육 평등관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돌아가는 흐름들을 배웠다. 그리고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개인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막중한 책임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컨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능력에 따라, 자녀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이 달라지고, 지역 격차, 학교 간의 격차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시한 채,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입시결과'를 오로지 개인이 감당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대입 실패를 변명으로 가져가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전 국민이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범국민적인 이 학벌 콤플렉스는 뭔가 잘못되고 한참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교육봉사로 만났던 지역아동센터나 학습상담, 가정 방문을 떠올렸다. 가정의 사회경제적 위치 및 지위가 낮은 경우에, 모델링이든, 경제적 자원의 부족이든, 돌봄 기능의 상실이든 학업 및 진로적인 자극이 부족해 보였다. 소위 강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원 뺑뺑이를 돈다고 하거늘, 집에서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 하냐고 물었더니 안 한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교육격차가 가장 심한 곳, 인구 밀집도가 높아 서로 비교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곳, 이곳은 바로 21세기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