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 싶어하는가?

진로선택. (번외편) 언제부터 학벌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리도 지독한 외로움을 겪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인생의 본질을 찾았다.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동급생들은 급식실로 전력 질주할 때, 나는 조용히 도서관에 와 책을 읽었다. 아니, 사실 책은 많이 읽지 않고, 큰 책장 사이로, 몸을 숨기며, 점심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가끔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점심 딱 한 숟가락만 먹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은 적이 있었다. 아니 교문 옆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지만 사서 먹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급식실이 바로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있건만, 차마 혼자 급식실에 내려갈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이 나와도 혼자 먹는 것보다 초라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언제 한 번은 사람도 너무 많고, 어디 앉아야할지 모르겠어서, 얼떨결에 6인용 식탁에 5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테이블에 앉았던 학생들 '얘는 뭐지?'하고 보내는 당황스럽움, 약간의 경멸에 찬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또, 언제 한 번은 눈 딱 감고 내 앞 대기줄에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어, "혹시 오늘만 같이 밥먹어도 돼?"라고 이야기해본 적도 있었다. 이 역시 거절당했는데, 당황스러워 하며 거절하던 그 두 명의 친구들의 모습도 마치 저번 달에 있었던 일처럼 눈에 선했다.


그렇게 적어도 1년 정도는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도서관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지 말고, 친구들을 같에 도서관에 온 이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담임선생님의 말씀처럼 나한테 몰두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은 좀 들긴 한다.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지금도 이렇게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교육과 상담, 사회복지라는 분야가 의대나 로스쿨 만큼의 공부를 요구하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그 중에서도 더 좋은 대학은 있으니 그런 부분은 나의 인정욕구를 충족해주기에 지금은 충분한 성과가 아니었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1년 후, 나는 초등학교 때 친구를 찾아 밥을 같이 먹었다. 그 친구도 혼자 다녔지만, 나와는 다른 점은 공부를 매우 잘하고, 매일 매일의 계획이 있는 친구였다. 나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 공부였다면, 진짜 그 친구는 교과서를 몇 번이나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를 교과서를 쓰고 또 썼다.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한학기가 지나자, 반 친구들이 그 친구가 공부 잘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 둘 씩 몰려왔다.


아마 이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에도 급이 있고, 친구를 사귀지 못할거면,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 아니, 공부를 잘하는 척이라도 해서 친구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내 속의 나는 허구로 부풀어 갔다.


허구가 부푼만큼이나 내 안에 어린 나도 자라지 못했다. 친구관계에서의 외로움으로부터 드는 무력감이 자책감이 되고, 친구관계의 경험이 부재하다면, 공부라도 했어야 한다는 채근들이 내 안의 아이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이 일이 있고 11년이 흐른 후, 내 안에 그 15살 아이에게 '그 때 그게 최선이었어'라고 말하며 감싸주어 기어이 키워 냈건만, 허구 속의 부푼 마음을 가진 그 아이는 끝끝내 자라지 못했다.


부푼 마음은 더 자라고 자라 두둥실 올라,

스치는 바람에도 더 높게 더 높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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