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팅과 운전자 친절도의 상관관계

영국 1년 살이의 기록들 2

by 물결맘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1년 살이를 시작한지 이제 한 달 가까이 됐다.


160kg이 넘는 짐을 한국에서 이고 지고 왔지만, 이곳에 와서도 사야할 물건이 한 가득이었다.

특히 비싼 외식 물가에 하루 두 끼니 이상 요리를 해야 하기에 부엌 용품이 많이 필요했다.

이케아에 가서 100만 원이 넘게 장 보길 여러 번,

그 물건들을 모두 옮기자니 중년의 뼈가 바스라지는 기분이었다.

2~3주 동안 동네 마트를 모두 섭렵하며 살림을 사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살만한 구색이 갖춰졌다.

이제 11살인 아이는 영국의 중학교 격인 secondary school 7학년으로 등교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일상 루틴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살림을 갖추는 것만큼 힘들었던 것이 영국에서 운전하기다.

영국은 일본 등과 같이 차가 왼쪽 차선으로 운행하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시스템이다.

뭐 좌우 구분만 익숙해지면 되겠지 싶었는데, 웬 걸 그 외에도 높은 허들이 많았다.


우선 중앙선이 노란색이 아닌 흰색 점선으로 그어져있어서

이 도로가 양 방향인지 일방 통행인지 차량 흐름을 보며 짐작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도로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한 차량만 겨우 지나가게 길이 좁아져서

반대쪽 차가 다 지나가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구간도 나타난다.

고속도로 최대속도도 112km/h로 한국보다 훨씬 빨라서 고속도로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후덜거린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라 불리는 회전 교차로.

들어갈 때, 출구 순서대로 나갈 때의 깜빡이 신호와 차선 규칙이 모두 달라 너무 까다롭다.

부부 모두 한국에서도 운전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나었어서

영국 도로로 나설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제 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차로 15분 거리의 옆 동네 아이 학교까지는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도로 사정이 익숙해지자 조금씩 영국 운전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아곳 영국 사우스햄튼 운전자들의 친절이다.

나는 초보 운전을 뜻하는 'P'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다니는데,

운전이 조금 미숙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앞에서 버벅거리고 있어도 뒷차가 클락션을 울린 경우는 손에 꼽는다.


어느 날은 다리에 진입할 때 차선 이동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달리고 있던 차가 먼저 차선을 이동해 자리를 잡고

비상 깜빡이를 켜 뒷차의 속도를 조절해주면서

내가 안전하게 차선 이동을 완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닌가!


영국 도로에서는 초보 운전자도 모두에게 돌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마음이 놓이고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움직일 타이밍을 놓쳐도 뒷차가 '빵' 클락션을 울리는 게 일상이었기 떄문에(나 역시도...)

어디서 이런 차이가 오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영국 차들은 차 유리창,

특히 앞 유리와 운전석, 보조석 유리창에 썬팅을 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운전을 할 때 상대방의 표정이 여과없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더욱 친절하게 운전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전과 다르게 운전할 때 표정관리를 하게 된다고 할까,

상대방이 친절을 배풀면 꼭 손을 들고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운전할 때 다른 운전자를 향해 미소를 지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음... 단 한 번도 그랬던 기억이 없네....


1년 살이할 곳으로 영국 사우스햄튼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쪼그라들었던 내 마음이 조금은 이완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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