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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신봉자의 배신

브랜딩, 소비주의, 사람

by 헌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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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한 지 1년이 지나 가끔 내가 쓴 게 맞나 의심스러운 낯선 글, 그리고 그 글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꾸러미에 이따금씩 반응이 날아오곤 한다. 민망하다. 특히나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끄적였던 글에 조회수가 10,000회 돌파했다는 알람을 볼 때면 눈을 찔끔 감는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떠오른 것처럼 말이다. 글에 잘못된 정보가 삽입되었거나 남들이 모르는 오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활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움직일 뿐.


민망한 글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브랜드가 더 좁고 깊어야 하는 이유, 취향을 파는 브랜드가 뜨는 이유… 브랜드가 설계한 일련의 경험에 이유를 찾아가며 브랜딩의 시선을 더한다는 나름의 포부를 지닌, 그리고 꽤나 공을 들인 글이었다. 읽히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공부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생에게 수요가 넘치는 ‘브랜딩’이란 키워드는 매력적이었다. 브랜딩을 주제로 한 글이 같은 학과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하기에도, 이력서 한 줄로도 요긴하게 잘 쓰일 것을 기대했다. 나름 원고비를 받고 글도 써보고, 학생의 글치고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럼에도 마치 싫어하는 남이 쓴 것 마냥 이 글들이 미운 이유는 브랜드와 삶을 계속 엮으려 했기 때문이다. 난 브랜딩 신봉자였다. 소비주의 시대에 브랜드의 미션은 삶에 힌트가 되고, 브랜드는 한 사람의 개성을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고 믿었으니까. 브랜드가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많은 브랜딩 신봉자가 저지르는 가장 불행한 믿음에 도달한다.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브랜딩은 언제나 타인에 방점을 둔다. 브랜드만의 ‘다움’, 브랜드만의 ‘철학’처럼 ‘만’이라는 조사가 항상 붙는다. 이는 브랜드 고유의 개성을 중시하는 듯 보이지만 다른 브랜드와는 달라야 한다는 특성을 더욱 강조한다. 멜론 Top100을 듣는 브랜드는 차별성이 없다고 질타받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브랜드가 탄생하는 요즘,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드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제 누가 더 진심이냐를 보여줘야 한다. 브랜드는 고객과의 모든 접점에서 키워드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한다. 단어 하나, 픽셀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설계한다. 한때 내게 성경 구절과도 같던 송길영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진정성은 타인의 평가이다” 브랜딩 세계에서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브랜드에게 타자와의 비교는 숙명이다.


꽤나 심술이 난 듯 보이지만, 브랜딩이 곧 죄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키워드가 마치 개성과 진정성을 만들어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경계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에 차별성 그리고 증명해야만 하는 진정성은 필요 없다. 다르기 위해 존재하는 브랜드가 내 삶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내가 팔리는 브랜드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앞으로의 글은 지극히 유희로서 개인의 질문을 적어볼까 한다. 아무래도 무언갈 끄적인다는 건 재밌으니까. 이곳에서 브랜딩에 대한 조그마한 힌트를 얻으려고 구독을 눌렀던 분들에게 죄송하다. 다만, 그렇게나 브랜딩을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쓰려는 글이 무엇일지, 또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브랜딩에 심술이 났을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브랜딩이란 단어는 다음 글부터 일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다음 글은 심술 가득한 이 글보단 재밌을 것.



◎ 아무거나 추천합니다

Aria Shahrokhshahi

Sketchbook Volume II

사진작가 아리아 샤흐로크샤히가 5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촬영한 <Sketchbook Volume II>. 극한의 환경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정상성에 주목한다. 이와 별개로 이 작품을 내게 소개해 준 온라인 잡지는 바로 1980년에 창간한 영국의 월간지 더 페이스(The Face). 2019년에 온라인으로 재발간했으며 예술과 창작이 낯선 내게 재미를 알려준 잡지이다. 다른 섹션보다 Culture 섹션에 주목할 것.


링크 : https://theface.com/culture/ukraine-aria-shahrokhshahi-war-photograp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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