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소호를 구한 주부, 제인 제이콥스

도시, 신도시, 재개발

by 김준헌
©The Library of Congress

오래된 장기판이 사라진 탑골공원, 광장시장과 종묘에 들어설 빌딩의 그림자. 그리 오래 되지 않은 DDP를 없애자는 정치인의 공약도 나온다. 오늘날의 도시 계획은 낡은 풍속을 제거하고, 과거의 유산을 감추는 데 집중한다. 효율성을 필두로 도시를 재단장하고, 일상과 동떨어진 화려한 외피를 씌우는 일에만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것 같다. 동네마다 도무지 분간이 안 가는 신도시는 벌써 4기를 맞이하고, 미적 요소만을 갈아 치우는 도시 브랜딩은 매년 화두에 오른다. 이 모든 계획의 주인공은 어쩐지 도시를 살고 있는 시민이 아닌 듯하다.


도시 문제를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 운동가이자 저술가인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가 지닌 고유한 이야기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서사와 적절한 무질서, ‘사람 냄새’는 어떻게 좋은 도시를 만들까?

©Flashbak

평범한 주부가 바라본 ‘진짜’ 도시 문제

“도시는 사람들이 만들어 갑니다. 도시 계획을 세울 때 고려할 대상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입니다.” _제인 제이콥스

제인 제이콥스는 건축가나 도시 공학자로 교육받지 않았다. 그 탓에 그녀의 주장엔 ‘평범한 주부의 선전’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각종 매체에 건축 비평을 부지런히 투고하고, 뉴욕 건축 포럼의 부편집장을 역임할 정도로 도시 문제에 애정을 드러냈다. 오히려 제이콥스는 전문가만이 도시 계획에 참여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전문가’는 그곳에서 살고 일하는 시민이라는 것. 그녀 또한 전문가로 양성되지 않았기에 시민의 시선에서 도시 문제에 접근했다.


제이콥스가 도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거리에 홀로 남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녀는 재개발된 필라델피아의 슬럼가에 방문했다. 세련된 쇼핑몰과 모더니즘 양식의 주택 단지로 뒤바뀐 활기찬 광경을 기대했지만, 도보에 행인이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 거리에는 타이어를 차며 시간을 때우는 어린 소년만이 남아있었다. 제이콥스는 ‘공동체가 기숙사로 대체되었다’고 비판했고, 당시의 재개발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방사형 도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르코르뷔지에의 안티테제

제이콥스가 본격적으로 도시 계획을 공부했던 1935년,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 계획안을 발표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는 그가 추구하는 기하학적이고 효율적인 건축을 도시 계획에 이양했다. 철근과 콘크리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아파트를 고안했고, 인간의 신체 치수와 비율에 근거해 방을 설계했다. 또한 기존의 무질서한 도시 경관을 매끄러운 고층 건물과 넓은 차도, 격자형 블록으로 개량하는 혁신적인 계획이었다.


이에 제이콥스는 다양한 건물과 사람이 교차하는 고밀도의 거리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반박했다.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천편일률적인 건축물과 반듯한 도로는 도시 공간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때 당시의 위상으로 따지면, 감히 르코르뷔지에게 말이다. 제이콥스의 도시 계획은 르코르뷔지에와 지극히 상반되어, 안티테제로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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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라진 거리, 도시가 무너진다

제이콥스는 자신의 주장이 빈껍데기가 되지 않도록, 증거와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드러난 그녀의 논리적인 비평은 꽤 설득력 있었다. 제이콥스가 저서에서 서술한 좋은 도시의 핵심은 ‘걷고 싶은 도로’다.


제이콥스는 안전하지 않은 거리 때문에 도시가 버려지고 황폐해진다고 생각했다. 시민이 거리에 나서기 망설이면, 점차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개인의 구역을 확보하고 거리를 비운다. 또한 그 구역을 지키는 경비원과 관리인 등 감시 인력을 세워, 이웃은 점차 단절된다. 제이콥스는 이 순환이 결국 슬럼화를 자아낸다고 말했다. 그녀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 싶었다. 길을 걷는 모두가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익명의 감시자가 되고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결되는 거리 말이다.


제이콥스는 도시에 도보를 줄이는 고속도로와 다차선 차도를 반대했다. 짧은 블록과 좁은 골목을 지키려 했고, 걷기만으로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하나의 큰 복합 공간보다 작고 다양한 상점을 나열하고 싶었다. 집과 직장, 역세권과 비역세권, 아파트 단지와 외부 같은 명확한 경계를 허무는 것. 그녀에게 다양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활력 있는 거리는 좋은 도시의 필수 조건이었다.

스페인 폰테베드라 ©Wikimedia / 코펜하겐 스트뢰에 ©Leo F

그녀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스페인의 폰테베드라는 1999년부터 도심 전반을 보행 우선 구역으로 전환했다. 자동차 중심이던 도시 구조를 보행자 중심으로 재편한 후, 약 10년 사이 인구가 2만 5천 명 이상 증가했다. 현재까지도 유입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고, 스페인에서 가장 젊은 도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코펜하겐의 ‘스트뢰에 거리’ 역시 보행 중심 도시의 좋은 사례다. 1960년대, 자동차 증가로 도시 문제가 대두되던 시기에 코펜하겐은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차 없는 거리’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든 것. 오늘날까지도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상점들이 거리의 밀도를 채우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걷고 싶은 거리를 지닌 도시는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처럼 여전히 시민의 품에서 생명을 얻고 있다. 도시의 활력은 거대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오가는 거리 위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MVMBLDG

권력에 맞서 동네를 지킨 히어로

반항은 아이콘이 되곤 한다. 그러나 제이콥스가 후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당대의 흐름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실제 거리로 나가 도시를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에 헌신을 다했다. 그녀의 투쟁심은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 건설 사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는 10차선의 고속도로를 연장하여, 교통 흐름을 개선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증축하려면 예술가의 마을 소호와 리틀 이탈리아의 개성 있는 거리가 훼손해야 했다. 해당 프로젝트를 조명했던 작가 앤서니 플린트에 따르면, 이 증축으로 2,200가구, 365개의 소매점, 480개의 기타 상업 시설이 입주한 416채의 건물이 철거될 예정이었다.

©Build The Skyline

뉴욕에 고속도로를 들이고자 했던 인물은 로버트 모제스. 그는 오늘날 맨해튼의 격자 구조를 구현해 낸 인물로, 막대한 권력과 부를 바탕으로 뉴욕 재개발에 앞장섰던 도시 공학자다. 제인 제이콥스는 그에 맞서 이웃과 여론을 규합해 강력하게 투쟁했다. 도시를 구원하고자 했던 목적은 같았지만, 파괴로 이루고자 했던 인물과 보전으로 이루고자 했던 인물의 상반된 견해가 부딪혔다. 제이콥스는 모제스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저서를 모제스에게 보냈다. 돌아온 모제스의 답장엔 ‘이런 쓰레기는 다른 사람에게나 파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일화는 그 둘의 대립이 얼마나 극명했는지를 보여준다.


제이콥스는 주민을 도시에서 쫓아내는 계획을 세운 시장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고, 지역 주민을 조직해 시위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청문회를 열라는 주 법원의 명령을 받아내고, 공식 자리에서 연설을 펼치며 점차 여론을 돌렸다. 제이콥스는 내란 선동 및 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결국 뉴욕 시장은 모제스의 고속도로 계획 폐기를 선언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후대까지 이어져, 이후 40년 동안 로어 맨해튼(소호), 브루클린 북부, 퀸스는 단 하나의 건물도 허물지 않고, 단 한 명의 시민도 내쫓지 않았다.

©Magnum and John J. Burns Library

깔끔한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 우뚝 솟은 마천루,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고층 복합 단지. 제인 제이콥스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살고 싶은 도시의 이상적인 표본이 된다. 마찬가지로 들쭉날쭉한 건축 양식, 구불구불한 골목길, 작고 다양한 상점이 나열된 거리도 누군가에겐 지키고 싶은 도시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대부분의 동네는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언제나 개선해야 할 도시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강변북로를 따라 서울의 동서를 신속히 오가더라도, 때로는 북촌의 골목길을 느지막이 걷고 싶다. 아파트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단골 카페 사장님과의 스몰토크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한정된 자원 아래 효율성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가치와 가능성을 품은 모든 거리를 허무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개성이 존중되는 공동체, 이웃과의 교류, 정 많은 거리는 ‘역세권’, ‘신축’, ‘모더니즘’이라는 단일한 틀 안에 머무는 한, 소멸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비단 건축가, 행정가, 도시 공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수요는 분명 거리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경관이 한층 이채롭기 위해서는, 우리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 또한 획일화되지 않은 가치를 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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