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56 서점원의 서울 출장
1. 기후위기와 코로나 앞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사회가 왔다는 것을 실감해요.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함을 알면서도, 더군다나 변화의 속도는 이전보다 빨라져 사회 속도에 대응할 민첩함도 가져야 함에 작은 좌절이 일어나곤 해요. 어려운 시기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으로 조금씩 힘을 내고 있어요. 여러분도 힘내어 사회 속도와 일상의 무거움을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2. 지난 화요일에는 서울 출장을 다녀왔어요. 열차에서 바라보는 한강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이 순간이 멈추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고요한 한강을 만났어요. 온전히 사랑받는 순간이 있다면, 세상이 멈추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비슷한 기분이었어요. 열차가 서울역에 다다르지만 따뜻한 감정이 식는 것 같아 내리기 싫은 것 있죠.
3.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잖아요. 발표를 앞둔 공간 근처에 좋아하는 책방 <땡스북스>가 있어 조심스럽게 다녀왔어요. (사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독립서점이나 동네책방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곤 해요) 노란 불빛을 환하게 비추는 이 곳은 소비문화가 끊이지 않는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요. 반짝이는 간판들 사이로 수줍고 차분하게 앉아 있는 듯한 이 서점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서점원의 목소리를 길게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나긋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기분이에요. 서점 전면에 비치된 기획전과 도서 큐레이션이 재밌는 서점이거든요. 우연히 만난 유지혜 작가의 신간 <쉬운 천국> 초판본을 구매했어요. 출간을 기념하듯 사인까지 되어 있어 구매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4. 콘퍼런스가 종료된 후에는 <1984> 서점으로 향했는데요. 커피와 책, 프라이탁이 있는 공간이에요. 다행히도 테이블은 열려 있었고 일하는 사람과 독서하는 사람이 곳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구매하고 싶은 책과 프라이탁이 잔뜩 있어 한 숨 크게 들이쉬고 지갑이 있는 주머니 문을 꽁꽁 잠갔어요. 큰 일 나거든요. 대신 출판을 함께 하는 서점이라서, 1984 출판사의 책을 여러 권 주문했어요.
5. 연남동에 가면 <서점, 리스본>에 꼭 들러요. <땡스북스>만큼이나 따뜻한 기운을 내는 서점인데, 공간은 작아 보여도 힘이 엄청나거든요. 서점 문화, 서점 생태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보여 마음이 가는 곳이에요. 종종 <그래도, 사랑>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작가님이 계셔서 사인도 받을 수 있어요. 화요일에는 박가람 작가님이 계신다고 해서 <사랑과 가장 먼 단어> 사인본을 구매했어요. 사인본이 필요하다면, 리스본 서점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놓치지 마세요.
6. 서울 출장의 목적은 <동네서점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다다르다의 일 년, 지역 독립서점의 현황을 보다 작은 범위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였어요. 출판 종사자, 서점 종사자 분들을 위한 자리라서 더 객관적인 자료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다른 서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말씀드리기가 어렵더라고요. '도서정가제' 이슈를 제외하더라도 2020년의 피로도는 다른 해에 비해 높은 편이에요. 서점으로 많은 돈을 벌겠다는 마음은 아니어도 하고 싶은 일을 어렴풋하게 상상하고 꿈꾸며 버텨왔는데, 이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어두운 전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오프라인 공간의 필요성과 존재 가치는 조금씩 나누고 있으니, 어디선가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겠죠. (서점원 라가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