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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Nov 22. 2020

책과 사람, 서점에 다다르는 시간

다다르다 서점일기 #55 다다른 북토크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이틀 사이에 다다른 북토크를 세 차례나 진행했다. 금요일 밤에는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작가, <기록의 쓸모> 이승희 작가가 연이어 독자들과 만났고, 토요일에는 출간 준비를 앞둔 정혜윤 작가가 시간을 쪼개며 대전으로 달려와 <아무튼, 메모> 북토크를 오전 11시에 진행했다. 하루 두 차례의 북토크와 토요일 오전 11시의 북토크는 내게 큰 실험이었다. 준비했던 '일상 기록'의 주제를 넘어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잊지 말자며 함께 했던 이들과 울고 웃으며 작은 연대감을 느꼈다. 앞으로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박선아 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작가의 북토크를 두 차례 남겨두고 있지만, 어제 느꼈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기록 중이다. 


매번 실수가 많고 서툰 편이다. 준비된 만큼 보여주기만 해도 다행일 텐데, 준비된 만큼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여러 번 느끼는 편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고, 일손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준비 과정에서 큼지막한 실수를 경험하며 일과 삶의 경계를 되짚었다. 비대면 시대와 공모 사업의 진행 방식에 제약을 느끼며 자발적이고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서도 새삼 느꼈다.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는 해당 책과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이 교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다수가 모였을 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두 시간 동안 책을 넘어 대화를 나눌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작가와 독자가 서로의 삶에 어떻게 동기부여를 줄까' 등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진행한 프로젝트라서 참가비를 받을 수 없었다. 공공의 입장에서는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해 프로그램 운영비를 후원하고 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독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무료 행사로 전락해버릴까 봐 걱정이 앞섰다. (서점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작가와 독자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 좋지만, 서점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가벼운 팬 미팅 형태의 북토크도 각자의 독서 시간을 늘리는 데에 보탬이 되겠지만, 지역에서의 기획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없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서점 단골손님 중에서는 북토크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직접적으로 전해준 이들이 있다. 서점 공간은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서점 바깥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오히려 작가가 프로그램의 이유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서점에서 진행해야 의미가 있지 않냐고 이야기해 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이번에는 신청 인원의 절반도 함께 하지 못했다. 다섯 작가 모두 대전에서 첫 번째 북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평소에 만나기 어려웠던 이유에서 신청자가 몰렸던 것 같다. 두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보다 밀도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평소에 서점과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께 북토크 참가 기회를 주고 싶었다. 결국에는 사전 예매 일정과 링크를 오픈하고 선착순으로 받았지만, 나름 몇 가지의 미션을 요청하며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이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책을 읽고 작은 엽서나 종이에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자고 요청했다. <아무튼, 메모>의 정혜윤 작가는 필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책을 읽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책을 넘기는 것은 독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필사는 책을 곱씹으며 작가의 표현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의 확장을 불러일으키고, 삶의 태도에 변화를 주는 독서 습관일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책을 꼭 들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단순히 기념사진을 찍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정말 책을 읽은 사람만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다다르다에서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좋다는 문장을 함께 적었다. 세 번째, 출판 생태계와 서점 생태계를 위해 당일 책을 한 권씩 구매해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로그램 진행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데 정작 인건비와 공간 대관료, 입장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독자와 관계를 맺는 것 이외에 직접적인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독서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윤리적 소비를 부탁했던 것이다. 


책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서 책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살아간다. 보다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일상, 주변인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 작은 공간에서 독서 문화가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을 작게나마 시도하면서 새로운 독서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전에 진행했던 '돗자리 독서회'라던가. 새로운 형태의 북토크나 독서 모임 운영처럼. 


우리가 지내는 동네 주변에는 새로운 독립 서점이 줄곧 생겨난다. 각각의 서점에서 주인의 취향에 따라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운영되고, 하나둘씩 독자가 모여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면 지금보다는 덜 삭막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는 도시가 될 거라 믿는다. 동네 주변에 어떤 독립 서점이 있는지, 어떤 이유에서 공간을 만들고 서점을 운영하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로맨틱 대전. (서점원 라가찌) 


아참, 오늘의 텍스트.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우리는 누구나 매일 다른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잖아요. 그 와중에 지나간 이야기는 잊히고요. 망각을 보완할 수 있는 건 기록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기록의 쓸모』 이승희


"우리 사회는 꿈을 너무 오래 말하는 사람을 억압한다. 너무 오래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을수록 철부지 사춘기 미성숙한 소년쯤으로 여긴다." 

『아무튼, 메모』 정혜윤


"사소한 일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한 사람 안에서 사소했던 일이 점차 거대해지고, 한때는 거대하다 여긴 일들이 한없이 사소해지기도 하는 시간을 매일,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박선아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다른 이들과 손을 맞잡음으로써 그 목소리는 더욱 큰 울림으로 퍼진다. 때로 목소리의 힘은 그의 온 인생으로부터 온다."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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