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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Dec 09. 2022

책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여행할 생각을 하니 설렌다.

다다르다 서점일기 #20221208

@2022 대전 은행동, 다다르다


1. 서점을 오기 위해 먼 걸음 달려온 분을 만나면 묘한 감정이 든다. 장소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것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순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다다르다를 찾아온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며 시를 쓰고 있다. 여행 중이라는 것을 눈치챌 정도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는 책을 살펴보다가 김종완 단상집 앞에 멈추었다. 만듦새가 귀여워 종이의 질감과 인쇄 방식에 대한 궁금증을 만드는 독립출판물인데, 꽤 많은 종류의 책 앞에서 제목을 번역해가며 어떤 책을 고를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제목이라도 번역해드리고 싶어 가까이 갔건만,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분말이 다 녹지 않은 물잔의 밑바닥>, <흩날리는 밤>, <생각이 방 안을 돌아다녀> 이런 제목의 책은 번역기를 돌려봐야 작가의 의도가 담기지 않으니 설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의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기를 바라요. 책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여행할 생각을 하니 설렌다. 도쿄가 아닌 지역 도시에서도 한국어로 인쇄된 독립출판물을 볼 수 있는 서점이 생겨나면 좋겠다. 시부야만 가더라도 꽤 많은 한국어 책을 보던 것처럼,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2. 서점에서 열흘 넘게 혼자 일하고 있다. 공간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감정, 누가 올 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 어쩌면 아무도 오지 않을 순간일지도 모른다. 트위터에서 독립서점, 동네서점의 소수 자영업자 때문에 도서정가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글을 보고는 울컥해서 답변을 남겼다. 온라인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 감정을 추스르는 정도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걸까. 도서정가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정책을 찬성하는 작가를 거론하며 죽일 놈이라는 메시지, 서점이 사라져야 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주장들 앞에서 시무룩해졌다. 나는 누군가의 삶이 사회에서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먹고사는 고귀한 일에는 가급적 의견을 내는 것을 피하는 편이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서점과 같은 특정 업종에 대한 특혜 정책이라는 말에 와르르 무너진다. 오프라인에서 얼굴 마주하며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까지 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  


3. 서점에서 일하면서 영화관을 가는 일이 줄었다.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예매했는데, 마지막 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영화 보기를 포기했다. 지역 재생과 부동산 디벨로퍼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전의 소제동과 대흥동을 여행하고 다다르다를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방문했다. 도시에 대한 도서 큐레이션을 보고는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는지, 처음 만난 독자분과 깊은 이야기를 잔뜩 나누었다. 도시에 대한 애정은 어디서 생겨나는지, 낯선 도시에서 일하는 이들의 커뮤니티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함께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좋았을 몇몇 독자의 얼굴이 떠올라 아쉬웠지만, 이런 순간적인 대화의 묘미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대화를 마무리 짓고 영화를 볼 걸. (열차 시간이 다 되었다며 곧장 나가시는 모습에 빠른 후회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2022 대전 은행동, 다다르다


d/R 다다르다

우리는 다 다르고, 서로에게 다다를 수 있어요.

We are all different, so we can reach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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