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축구장에 일찍
도착하는 이유

축구여행 #001 광양 Gwangyang

by 라가찌

20130922

전남드래곤즈 - 대전시티즌

광양 축구전용구장


평소와는 위치가 달랐을 시계바늘을 바라보며 분주히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 3시 전남드래곤즈와 있을 원정경기가 열리는 광양과는 정반대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대전에서 광양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운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시간이 남아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와 바나나맛 우유를 샀다. 마시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손에는 먹거리를 들고 있었다. 서울에서 예배를 마치고 가까이에 있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가 아니고서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게 낯설다.


비타 500 테마여행단으로 백두산을 떠나던 날 아침, 전날 거제도에서 놀다가 새벽 비행기를 꼭 타겠다고 술로 밤을 지새다가 잔뜩 취해 만취상태로 겨우 사천공항에 도착했었다. 음주로 탑승이 거부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술에 취한 티는 안났는가보다. 사천공항으로부터 김포공항까지. 처음으로 탔던 국내선 여행이었다. 아직은 시간보다는 돈이 더 아까운 상황이기에 제주도를 향하지 않고서는 국내선은 내게는 사치임에 틀림없다. 다행히도 올해까지 사용해야하는 대한항공 항공권이 있어 여유있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추석 연휴인데도 여수행 비행기는 한산했다. 옆자리가 비어 있어 괜한 여유를 부려봤다. 이석원 씨의 신간 소설 <실내인간>을 읽다가 쉬다가를 반복하고, 피부에 와닿지 않는 바람은 어떤가 구름을 살피고. 그러다 여수에 도착했다. 2시쯤 도착했을까. 조금이라도 일찍 경기장에 가고픈 마음에 여수공항을 구경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공항 앞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경기장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광양전용구장 도착.


2013 축구여행자

경기가 시작된 지 10분이 넘었는데 경기장은 고요하다. 홈팀의 응원 소리는 들리지 않고, 원정팀 대전의 응원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경기. 광양 축구 전용구장은 축구의 매력을 전달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이보다 가까울 수가 있던가. 최근 원정팀 근처 코너킥 부근에 있는 철조망도 철거 하면서 선수들과 스킨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플라타 선수가 드리블 후에 자신의 스피드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 앞까지 왔었다. 대전이 전남에 2-1로 앞선 순간인지라 플라타와 하이파이브라도 하기를 바랐었다. 아무 스킨쉽도 하지 못하고 그라운드로 돌아가 아쉬웠지만.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 경기시작후 경기장에 도착했지만, 평소에는 경기시작 두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하곤 한다. 홈팀 팬이든 원정팀 팬이든 경기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경기장에서 할 일도 없는데 일찍 도착해 무엇을 하냐고 불평한다면 할 말 없지만, 경기장에서 할 일을 찾았더니 많은 변화가 생겼다. 홈이든 원정이든, 선수들이 몸풀러 나오기 전에 골대 뒤를 가득 채우고 싶다.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이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시키고, 팬들이 경기에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전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골대 뒤를 화려하게 데코레이션 하는 우리의 모습 또한 축구 팬 문화의 일부다. 다양한 응원 메세지의 배너들과 팀컬러의 오방천, 데코레이션 천, 외국인 선수들의 국적 깃발 등이 골대 뒤에 걸린다. 가끔은 정말 하고 싶어하는 말들을 직접적으로 쓰기도 한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길 수 있는 경기를 비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약팀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웨슬리 선수의 핸들링 골 판정이 너무도 아쉬웠던 날이다. 외부 요인까지도 이겨낼 수 있어야 약팀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친 까닭에 무기력하게 원정버스에 올랐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버스는 대전으로 향할 뿐이다. 전남의 느릿느릿한 플레이와 심판 이야기도 꺼내고 싶지만 오늘은 꾹 참기로 한다. 무승부가 하루하루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나른한 오후, 우연히 트위터를 통해 대전의아들 이웅희 선수가 팬들에게 남긴 메세지를 보았다.


"시작전 서포터 분들을 보고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최악의 상황, 그리고 먼 전남 원정길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팬 분들의 함성을 듣고. 이 곳 팬들의 사랑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결심한다! 남은 경기 그 누구도 아닌 서포터, 팬 분들을 위해 뛰겠다고..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서포터스의 원정 담당자 역할을 자처하며 팬들과 많이도 싸웠다. 왜 이렇게 경기장에 일찍 도착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들과도, 90분만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냐는 분들과도. 홈에서나 원정에서나 우리가 경기장에 일찍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조금은 설명이 되었으려나 모르겠다. 축구가 가진 매력적인 문화 중 하나는, 팬들도 축구팀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다. 팬들도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선수들에게 응원 메세지를 전하고 더욱 더 팀을 소유하는 감정이 생긴다면, 축구팀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덧붙히자면 기존의 응원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팬들도 응원 구역 가까이에 함께 앉아 가벼운 응원은 함께 하면 어떨까. 선수들은 분명 단합된 팬들의 모습을 좋아할테니까. 우리의 작은 모습들이 경기 결과를 바꾸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축구팀을 사랑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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