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 곳곳에 무언가 정리된 모양으로 놓인 봉지가 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비닐봉지를 사각형으로 곱게 접어 넣어놓은 것이다. 각을 맞춰 비닐봉지를 접어서 차곡차곡 넣어놓았다. 사뭇 줄을 세워 놓은 듯 칼각을 맞췄다. 이것을 모아서 무엇에 쓰려는지 궁금했다.
"이거 어디에다 쓰실 거예요?"
"지저분하니까 잘 접어서 모아놓으면 다 쓸 데가 있어. 건드리지 말고 가만 놔둬"
그도 그럴 것이 가끔 비닐봉지가 필요해서 찾으면 다 버려서 쓸만한 게 하나도 없다. 물건을 담을 봉지를 찾아 한참 두리번거릴 때 어디선가 곱게 접어 각 잡힌 검정 비닐봉지를 슬며시 꺼내 주곤 했다. 덕분에 비닐봉지를 찾느라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무리 없이 물건을 담아올 수 있었다.
"어디서 났어요? 난 찾아도 안보이던데요"
"다 있어. 뭘 물어"
동생의 전화로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눈물이 핑 돈다. 입 밖으로 차마 꺼낼 수는 없어서 혼자 생각에 잠겨본다. 다음날 토요일이라 이것저것 장을 보아 달려갔다
이불 위에 이것저것 제법 가지런히 놓여있다. 머리맡에는 평소 사용하는 공책이며 이러저러한 책들이 쌓여있다. 예전부터 메모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중요하다 싶은 것은 모두 수첩에 기록해 놓았다. 쓰다 말고 버린 공책이 있으면 모두 모아놓았다. 그런 것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정리도 잘해 놓으셨네! 깔끔하다."
"다 모아서 버리려고 정리했어. 놔둬. 내가 다 모아서 한꺼번에 벌려고 그래"
"그래요? 애쓰셨네. 내가 대신 버려드릴게요. 이렇게 다 정리해서 모아놓으니까 버리기도 좋고 금방 깨끗해졌네요. 잘하셨어요."
"이제 거기다 무얼 올려놓는데? 참나, 네가 싹 치워서 놓을 것이 없는데.."
"...."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었다. 한탄하듯 내뱉은 말 한마디에 나는 그저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물이 흐르는 걸 참아내야 했다.
간식 드실 때 사용하라고 동생이 사다 드린 야외용 미니 테이블은 이미 선풍기가 올라가 있었다. 그 옆에 봉지를 모아서 가득 담아놓은 비닐봉지와 쓰레기를 커피믹스 빈 상자를 테이프로 곱게 붙여 놓은 것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그것을 모두 정리해서 밖으로 내놓으니 하시는 말씀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걸 사다 드릴까요? 어떤 게 올려놓으면 좋겠어요?"
"아까 집에 오다가 보니까 보건지소가 크고 좋게 잘 지어졌네요. 그 옆에 치매센터도 분소가 생겼네요. 다음에 저랑 같이 가서 머리가 아직도 똑똑하게 잘 기억하시는지 가봐요. 아주 좋게 잘 지어졌더라구요. 한번 같이 구경할 겸 가봐요. 미리 예방하는 게 좋아요."
"내가 거길 왜가. 나는 멀쩡하다. 내가 그런 걸 왜 검사해봐. 나는 아직도 얼마나 똑똑한데!"
실패했다.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데 절대 안 간다고 화를 내셨다. 대부분의 반응이 비슷하지만 이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더 이상은 말도 못 꺼내게 했다.
수집벽에 자꾸 모아놓고 눈앞에 두려고 하셨다. 그게 깨끗해서 좋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접고 접어서 정리하고 보이는 곳에 있으면 깨끗하게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집으로 오는 길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지만 부재중이었다. 다행이다. 만약 전화를 받았다면 둘이서 하염없이 울었을 테니까 차라리 잘 됐다.
문자를 보냈다.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이렇게 잘 키워주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외롭게 혼자서 살아오느라고생하셨습니다.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이런저런 큰 일들을 치러내시느라 큰아들 노릇, 큰형 노릇 하시느라 애쓰셨고 장하십니다. 뇌경색이 왔는데도 지금까지 20여년동안 건강관리를 참잘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