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분리수거
방 한쪽에 라면봉지가 놓여있다. 라면봉지 안에는 또 라면봉지가 들어있다. 라면봉지는 판판하게 펼쳐져서 곱게 손으로 눌러놓은 모습이다. 겉에 라면봉지 안에는 라면봉지가 가득 담겨있다. 왜 모아놓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면 아버지는 쓰레기 버리기 쉽게 모아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건드릴까 봐 한마디 거들면서.
"그냥 둬, 내가 모아서 버리려고 분리수거하는 거야"
전에도 내가 버렸던 것을 기억하시는 아버지는 행여나 모아둔 것을 또 다 버릴까 봐 걱정인 듯 내 손길을 따라 눈동자가 부산스럽다. 아버지의 걱정이 전해져 뻗었던 손을 가져오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
"아이고, 깔끔하게 정리하셨네. 이거 정리하시느라 애쓰셨네. 아빠! 이거 내가 나가면서 버려줄까요?"
"아녀, 내가 다 정리할 거야. 그냥 둬."
사실 라면봉지만 그렇게 정갈하게 모아둔 것은 아니다. 물건을 사고 담아주는 비닐봉지, 약국에서 약을 담아주는 약봉지와 집으로 날아오는 우편물의 편지봉투까지 모두 곱게 펼쳐서 정리한 후 종류별로 모아놓으셨다. 염려가 된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빠, 저랑 같이 요 밑에 보건소에 가볼까? 아직 건강하시지만 그래도 미리 약도 챙겨서 드시는 게 좋으니까 치매검사 한번 받아보고 치매예방약도 드시면 어때요?"
"내가 거길 왜 가. 난 괜찮다. 걱정하지 마"
단칼에 거절하신다. 사실 지난해 여름 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길 내내 눈물이 나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간식을 올려놓고 드시라고 사다 드린 조그만 캠핑용 밥상에 이것저것 물건들이 올라가 있었다. 정리를 해준다며 놓여있던 봉지며 편지봉투, 약상자 등을 치우고 상 위를 닦고 있는데 뒤에서 조그만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깔끔해졌네요."
"깨끗해져서 좋다만, 그런데 이제 거기에 뭘 올려놓는데. 이제 올려놓을 게 없네."
쓰레기를 모아두었다며 분리수거를 하려고 정리해 둔 것이라고 하셨던 아버지는 쌓아두었던 것들이 없어지니 허전해하시며 혼잣말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이게 웬 말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말 한마디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아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 단순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자식들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아버지는 자식들 걱정과 동생들 걱정이 끊이질 않는 분인데. 작은 상에 생긴 공간이 너무나 허전해서인지 그곳에 놓일 물건 걱정을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대신 걱정해 드릴 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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