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도둑도 안 무서워, 제일 무서운 거는..."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어버이날을 지나쳐버린 카네이션이 덩그러니 사무실에 있었다. 주문한 카네이션 도착 일정이 변경되어 어버이날 선물이 늦게 전달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어 늦게라도 배송에 나섰다. 그게 10일의 일이다. 어르신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가져간 카네이션을 꺼내 달아드리겠노라 말씀드렸다.
"뭐 이런 걸", "나는 됐어"라며 손사레를 치며 부끄러워 하면서도 싫지 않은 내색으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연신 미소를 잃지 않으신다. "올해는 카네이션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애들 보고 오지 말라고 했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꽃을 받는 분도 있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강경자(72세, 여, 가명) 어르신은 "먹는 거야?"라며 입으로 먼저 가져 가셨다. 나중에 들으니, 카네이션을 달고 밭에서 한참을 일하시다가 집에 들어오셔서도 가슴에 단 채로 주무셨다고 했다.
전북 군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나는 혼자 사는 어르신 댁에 방문해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동료들과 두 손 모아 '어버이은혜'를 함께 불러 드렸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노래를 부르던 사회복지사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끈해져서 한참을 위를 쳐다보며 겨우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요즘은 장기간 가족과의 왕래 없이 혼자 생활하시는 노인들이 많다. 부모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자녀들이 자주 오지 못해서, 혹은 부모님이 오지 말라고 당부해서였다. 자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 확진자가 많아서고,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에 확진자가 발생해서였다. 이렇게 서로 오지 못하게 하고,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찾아간 한 어르신은 밤에 문을 잠그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오히려 낮보다 밤에 문을 열고 잠을 잔다는 것이다. 낮에는 무서워서 문을 꽁꽁 닫아두는데, 밤에는 무서워서 문을 열어둔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왜 그런지 궁금해서 여쭈었다.
밤에 자다가 쓰러지면 누가 문을 열어줘...
문이 잠겨서 아무도 우리 집에 안 오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쓰러진 채로 있을 거잖어.
인자는 도둑도 안 무서워, 혼자 있다가 내가 죽은지도 암도 모르는 것이 제일 무서워.
나이가 들어 늙고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혼자 죽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더 크다고 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한참을 방치한 상태로 있는 다는 것은 너무 무섭고 외롭다고 했다. 점점 늙어서 혼자 죽어간다는 것은 '공포' 자체인 듯했다.
독거노인 수가 증가함에 따라 부양가족이 없는 무연고 65세 이상 노인의 고독사도 급증했다. '65세 이상 인구 사망자 수 및 무연고 사망자수'가 2015년 666명에서 2020년에는 1331명으로 99.8% 약 2배 정도가 급증한 것으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 노인 자살률의 세 배 이상이나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14년 발표한 자료에서 대한민국 70세 이상 노인 10만명 당 116.2명이 자살로 사망했으며, 이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역할 축소와 존재감의 부재로 인해 위축되고 있는 노인세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일 것 같다.
출처 : 2021.05.11.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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