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장소 만들기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어. 고향에 다녀와야 될 것 같아. 선산에도 가 보고 예전 살던 집에도 가봐야지. 지. 우리 집이 그대로 있나 모르겠네. 집 정리를 해야겠어."
정신이 조금이라도 온전할 때 예전 살던 고향의 집을 정리해서 처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집을 처분할 것인지 결정해서 살아생전에 마무리를 짓고 싶다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와 새로운 곳에서 정착해서 자식을 키우며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고향은 잊고 가슴에만 묻어두었다고 했다. 아니가 들어가면서 점점 고향이 그립고 옛사람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있는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남은 생을 살아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고향의 집이 생각났다며 요양보호사에게 고향에 데려다줄 수 있는지 물었고, 주소를 알아봐서 나들이 겸 다녀왔다. 집은 없어지고 집터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새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고향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뭉클하고 찡했던지 눈물을 보였다고 동행했던 요양보호사가 귀띔해 주었다.
"살아생전에 한번 가볼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살았던 우리 집은 없어졌지만 고향 풍경은 남아있어서 볼 수 있었지. 기억도 났다 안 났다 했어."
"네..."
행복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품은 채 이야기를 전하는데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남아있던 기억마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아니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운 고향이었건만 살아생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은 지금 남아있었을까. 어딘가로 떠나 다른 곳에 어르신처럼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을까. 궁금했지만 속으로만 되뇌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차마 같은 생에 남아있지 않다는 말을 들을까 봐.
올봄에 군산으로 이사 온 한 어르신은 치매로 인해 혼자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식사조차 챙기는 게 버거워진 일상으로 딸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어르신은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외출했다가 집을 찾아서 돌아오지 못할까 봐 아예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딸이 올 때마다 사 오는 생필품과 식료품, 반찬에 식사를 했다. 딸은 매일 들러서 아버지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해주었다. 집에서 TV를 보며 돌아가는 소식을 듣는 게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몇 달을 지냈을까. 결국 밖에 잠깐 나갔다가 낯선 환경에 길을 잃고 헤매느라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다시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이사를 했다. 6개월도 채 지내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돌봄을 책임지려 했지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예전 살던 곳에서는 늘 가던 곳과 항상 오고 갔던 익숙한 길에서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남아있는 기억 안에 아직은 저장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 만난 어르신에게 물었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것이 어떤 지 확인 차 질문을 던졌다. 마음 한쪽이 찡해왔다.
"어르신,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불편한 건 없으세요?"
"자꾸 까먹어. 기억이 안 나. 다른 건 다 괜찮아. 나이 들면 다 그렇잖아.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챙겨 먹고 있어. 걱정하지 마."
문제는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챙겨 먹고 있다'라고 하지만 사실 '자꾸 까먹는 것'때문에 밥도 약도 거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안 챙겨 먹은 것도 잊어버려서 다 잘 먹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라고 하시는 것이다. 한 번 찾아뵈려고 하니 극구 '잘 지내고 있으니 바쁘니까 오지 마'라고 하신다.
"나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깜빡거리는 것만 빼면 다 괜찮아. 바쁠 텐데 뭐 하러 와."
'자꾸 깜빡거리는 것 때문에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치매 #기억 #사회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