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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딜김 Aug 13. 2020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거짓이라면

영화 <13층>을 보고 생각한 것

<인셉션> 이전에 <13층>이 있었다.

최근에 <트루먼 쇼>를 다시 보다가 전에 보았던 영화 <13층>이 떠올랐다. 장르는 매우 다른 두 영화지만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같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유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거짓이라면? 혹은 나 자신이 거짓이라면? 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 <트루먼 쇼>는 티비 프로그램을, <13층>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공교롭게도 트루먼쇼는 98년, 13층은 99년 작품이다. 짐작하건대 이 때가 특히 존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인 것 같다.

 

특히 <트루먼 쇼>와 <13층> 두 영화 모두에는 등장인물이 세상의 끝을 확인하러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이게 99년 다음의 새로운 밀레니얼을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던 세기말의 혼란이 반영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를 잘 알지 못해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 뿐이지만, 급격한 발전의 끝은 어디로 향할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시기가 바로 저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작품들을 보면 정말 이들이 미래를 읽고 만들었던 게 아닌지 싶어서 감탄만 나온다.


지금의 관점으로 <13층>을 보자면 대단히 신선한 소재라고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아마 그건 우리가 이제는 이런 류의 작품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셉션>보다도 11년 먼저, 1999년에 이 영화가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랍다. 1999년에 이 영화를 봤었다면 내가 처음 인셉션을 보고 느꼈던 것 이상의 충격을 느꼈을 것 같다. 인셉션은 정말 13층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특히 <13층>이 마무리 될 때 나오는 화면이 꺼지는 효과는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가 계속 돌아가는 것과 유사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관객에게 맡긴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인 <13층> 또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13층 사무실을 뜻하는 것 외에도 가상의 세계가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내가 스위치 동숲은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에는 꿈꾸는 집이라는 것이 있다. 이곳에 가면 침대에 누워 꿈을 꿀 수 있는데, 꿈에서는 다른 마을로 여행을 갈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이 가상의 마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을 경험하는 창구가 꿈인 셈인데, <13층>의 시뮬레이션 게임도 그렇다. 가상의 세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뮬레이션 안의 세계는 실재의 세계와 똑같이 작동할 뿐더러 그 안의 인물들도 스스로를 가상의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다. 결국 게임 전원을 켰을 때만 작동하는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새로운 세계의 축이 생겨난 것이라고 봐야 한다.


<13층> 역시, 시뮬레이션 게임 안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지만 동시에 진짜이기도 하다. <13층>의 마지막에는 2024년의 세계가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는 영화가 나온 1999년보다 25년 뒤인 2024년을 그리고 있는데, 현재와 매우 가까운 24년의 세계를 마주하니까 묘하다. 그건 영화가 그린 2024년이 정말로 현재와 닮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미래가 나에게는 현재라는 사실이 영화의 구조와 겹쳐져 묘한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등장인물 중에는 99년의 현재와 1900년대 초반의 과거를 넘나들며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24년의 현재와 99년의 과거를 사는 사람이 있다. 다층적으로, 그러나 병렬적으로 시간이 구성되어 있다는 설정은 각각의 시간의 층들이 동시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2020년의 나의 현재가 지금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과거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과거의 과거의 과거는 어디까지 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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